8월부터 매 달 커미션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데, 블로그 글을 이전부터 팔로하셨던 분이라면 유달리 빈도가 늘어난 게 아닌가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이번 건은 자체 예산 초과를 감수하면서까지 의뢰서를 작성하였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나중에 읽어보기 위한 변명을 붙이자면, 지난 8월 별 기대 없이 리퀘스트 넣은 작가분의 첫 결과물에 (긍정적인) 충격을 받아 달에 한 번 꼴로 커미션을 넣는 만용을 저지른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매 번 예상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받게 되면서, 한 바퀴 돌아 처음 그림을 다시 보니 아쉬운 부분이 보이는 역효과 아닌 역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인데요.
굳이 무리하지 않고 예산에 여유가 있을 때 신청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도 해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커미션은-중계업체가 관여하는 경우도 있으나-기본적으로 개인 간 거래이다보니 내 예산이 허락할 때 상대방도 그 자리에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 몇 년 많지는 않지만 커미션하면서 그런 루틴으로 연기 속으로 사라진 작가도 여럿 접했으니까요.
변명에 가까운 해명은 이 쯤 하고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서 마음에 드는 캐릭터에서 시작하면 그에 붙일 아이디어가 한 번에 달라붙지 않더군요. 역발상으로 괜찮은 키워드에서 출발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이 또한 그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고르는 데 난항이 있어 문제 서순을 바꾼 셈밖에 되지 않았고요.
가상의 휴지통에 실패한 아이디어를 여럿 던져 넣은 끝에 그럴듯한 아이디어-캐릭터 조합을 발견했고, 번역기에 넣을 최종 의뢰서 초안을 써내려갔습니다. 완성한 의뢰서는 10월 24일에 접수하였는데, 이번에는 다시 7천엔 컨셉으로 복귀했습니다. 상술했듯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역으로 500엔을 줄여 6500엔으로 보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첫 의뢰였다면 모르겠으나 이제 와서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기에 실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안경닦이 구입 글에서도 언급했듯, 무작정 아끼는 게 능사는 아니니까요.
픽시브 리퀘스트 쪽에는 대기열이 없음을 확인했지만 알고 보니 이전에 skeb으로 리퀘스트 신청한 분이 계셔서 결국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신청서를 넣고 며칠 뒤 픽시브 리퀘스트 한 건이 더 들어와 리퀘스트를 제한하는 걸 보고 타이밍의 중요성을 바로 체감하기도 했지요.
이번 의뢰 후에도 작가 트위터를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전과 달리 들어온 작업 세 종류를 돌아가면서 조금씩 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처음 의뢰히는 작가도 아니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되새기며 기다렸지만 마감일 대비 1/3 지점인 20일을 경과한 시점부터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엄격히 말해 리퀘스트 건은 10월에 시작되었습니다만 11월 초 여러 종류의 기다림에 시달리고 나니 평상시보다 조금 더 민감해져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안 오네..."라는 생각이 들면 도착하던 음식 배달처럼 이전 문단에서 언급한 걱정의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기 전에 완성본이 도착했습니다.
계산해보니 23일만에 완성된 셈으로, 지난번(21일)과 비슷한 기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이 글의 초안을 저장하던 시점에서는 올릴 날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20211100'으로 파일명을 매겼는데, 우려에도 불구하고 월 단위를 바꿀 필요는 없었네요.
작가 코멘트: 한 손으로 푸시업을 하고 있습니다.
복근도 드러내기 위해 아래에서 본 것 같은 구도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번 그림은 본의 아니게 연작이 된 "건강한 가방" 시리즈(#1/#2)의 세 번째 작품으로, 이미 '완성'된 모습인 이전작과 달리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고 있는 컨셉입니다.
당연히 반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전신으로 도착했습니다. 시스템 상 본인에게 의중을 물을 수 없으니 편한 대로 여러 번 의뢰한 데 따른 보너스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구도가 특이한데 이는 의뢰서에 명시한 부분은 아닙니다. 인용한 픽시브 설명에도 적혀 있듯 작가분께서 연출을 위해 임의로 설정한 부분인데, 가방 모자를 '보관'하고 있는 보스도 역시 의뢰서에 없지만 추가된 부분.
맨몸 운동을 키워드로 잡은 이유는 작품 내적으로는 자파리 파크에 잘 보존된 피트니스 클럽이 있다고 설정하는 건 작가 편의적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다만 작품 외적으로는 제대로 된 운동 기구를 배치하기 시작하면 추가 의뢰 비용을 포함해 고려할 부분 많아지기 때문에 맨손 운동 중에서 골랐다고 하여야겠지요.
그런 이유로 최종적으로 푸시업을 골랐지만, 막상 의뢰서를 제출하고 나니 이게 표현이 잘 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번 커미션 글에서도 말씀드렸듯 작가분이 개인작으로도 해당 니치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향유하는 이가 원하는 '한끗' 차이를 잘 짚어냄을 새삼 느꼈습니다.
여담으로 이번 커미션을 마무리하며 파편화된 텍스트 파일로 기록하였던 역대 커미션 지출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였는데, 단일 캐릭터로 가장 많이 의뢰한 캐릭터가 가방이더군요. (cf. 첫 가방 커미션은 2018년 7월) 이벤트 등으로 받은 무료 스케치까지 어림으로 더하더라도 순위가 바뀌지는 않을 걸로 보이는데, 생각해보면 같은 캐릭터를 피겨로 두 종류 구입한 건 덕질 역사 상 처음이니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닌 건가 싶습니다.
이번에도 작가분 트위터에 올라온 작업중 그림으로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プッシュアップをやらせたいけど大胸筋と腹筋も見せたいと考えていたらこうなった pic.twitter.com/WQh19guwTj
— ししのぞみ (@duelist_rui) November 1, 2021
wip pic.twitter.com/rEKfDxac7x
— 借KARAKURIししのぞみ蔵 (@duelist_rui) November 11, 2021
【Commision】Kemono friends / Kaban
— ツイ禁できないししのぞみ (@duelist_rui) November 16, 2021
かばんちゃんを描かせて頂きました! pic.twitter.com/26IpDKR7Y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