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 소개할 두 장의 P90(소녀전선) 리퀘스트 중 첫 그림은 2022년 상반기 마지막으로 신청한 건수였습니다. 구상 단계에서는 1만엔 이하 가격대에서 새 의뢰처를 찾아보려 했으나 신입사원 고용을 꺼리는 고용주처럼 이전 작품이 없는 픽시브 리퀘스트/skeb 계정에 '믿음의 도약'을 하는 게 쉽지 않더군요. 플랫폼 특성 상 중간 점검이 불가능하다보니 리스크가 작지도 않고요.
그에 더해 막상 용기를 내 새 작가에게 신청서를 보내 봐도 정작 상대방이 가부를 결정해주지 않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픽시브 리퀘스트 기준으로 1주일 내에 가부를 결정하면 되지만, 경험적으로 늦어도 48시간 내로 연락이 오지 않으면 무언의 거부, 혹은 리퀘스트를 열여놓기는 했으되 방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더군요.
며칠 간의 방황 끝에 결국 의뢰 경험이 있는 작가에게 재의뢰하는 방향으로 게획을 바꾸었습니다. 이 분에게는 지난 3월 SIG MCX(소녀전선) 작품을 의뢰했었는데, 60일 마감에서 59일째에 완성품을 보냈음에도 결과물은 나쁘지 않아 인상 깊었던 분이었습니다.
6월 24일 신청서를 접수한 뒤 같은 날 승인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날 '합류' 기능을 사용했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누군가 싶어 계정명을 확인해보니 수많은 P90 리퀘스트를 넣어 한국 팬사이트에서도 유명한 분이더군요.
심지어 어느 새 제 트위터 계정도 팔로하고 있어 7월 어느 날 궁금증을 참지 못해고 트위터로 이유를 물어 봤습니다. 그 답변이 걸작인데, 본인이 픽시브에서 팔로하고 있는 작가에게 P90 리퀘스트가 들어온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답하더군요. 픽시브에서 모든 진행 중인 리퀘스트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없어 아쉽다는 말까지 덧붙이는 걸 보면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구나 싶었습니다.
이 글 초안은 유달리 빨리 찾아온 여름 더위와 정체전선이 혼재하는 6월 말에 쓰였는데, 지난번처럼 59일째에 받는다고 가정하면-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작품을 받는 시점은 삼복더위를 견디고 처서가 코앞인 시점이겠지요. 다만 돌아보면 이번 여름은 더위보다는 정체전선으로 인한 국지성 폭우가 큰일이었습니다.
두 달 전 예상한대로 신청 59일째인 8월 21일 새벽, 완성본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그림 주제는 캔버스 너머 상대방을 찍는 P90(소녀전선)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올릴 셀카 컨셉은 시도한 적이 있지만 상대방을 촬영하는 컨셉은 처음입니다. 사진첩의 절반은 풍경, 나머지 반은 정물인 사람으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용례이지만, 상상력은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P90
— Aldi Fauzan (@ouzan_b) August 20, 2022
Pixiv requested work, thank you!!! #少女前線 #少女前线 #ドールズフロントライン #소녀전선 #ドルフロ pic.twitter.com/inT4us5771
처음 신청할 때에는 1천엔 인상한 데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지출이 많아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없겠죠-두 달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총기 묘사에 간단한 배경까지 들어가는데 캐릭터 하나 당 9천엔이라면 제법 괜찮지 않나 싶네요. 참고로 이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는 리퀘스트가 닫혀 있는데, 신청이 많아 임시로 닫은 건지 아예 손을 떼려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도 커미션 두 건을 한 개의 글에 정리하였습니다. 받은 순서에 따라 병합한 지난 글과 달리 이번에는 그나마 같은 캐릭터라는 공통점은 있군요. 두 번째 커미션은 신청일 기준 1주일 전까지도 예정에 없었지만 예전 커미션을 훑어보다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이번 커미션은 "소녀전선" P90 캐릭터에 드라마 "스타게이트 SG-1" 외계행성 작전용 복장을 입한 모습. 방금 게이트를 통과해 주변 정찰하는 장면. pic.twitter.com/ifE9LKod2J
— Paranal (@nagato708) October 28, 2020
예전 글-과 거기에 인용한 트윗 스레드-에서도 길게 썼듯 제가 해 본 적도 없는 모바일 게임 캐릭터로 커미션의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드라마 "스타게이트" 시리즈에서 FN P90이 주력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두 가지 주제를 섞은 그림은 여태까지 한 번밖에 의뢰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평범한 '2D 미소녀' 의상이 아닌 택티컬한 조끼와 총을 그려주시면서 커미션을 받는 작가는 상당히 귀하기 때문입니다. 혹여 있다고 해도 가격대도 상당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위에서 발췌한 선화가 10만원 미만으로 그려졌다는 게 놀라울 지경입니다.
그러다 7월 중순, 오랜만에 예전 그림을 사진첩에서 넘겨 보다 총은 양보하더라도 택티컬한 의상까지는 그려줄 작가는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의상 레퍼런스를 준비하고 신청서를 작성한 뒤 작가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우려한 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주시는 분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예전에 가격이 저렴해 눈여겨 보았지만 설명이 알쏭달쏭해 신청을 단념했던 작가의 리퀘스트 페이지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선문답같은 설명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요청을 보낼 계정도 마땅치 않아 7월 22일 신청서를 가다듬어 제출한 뒤 24시간 알림을 설정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이런 조치가 불필요했는데, 3시간도 지나지 않아 승인했다는 메일이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막상 승인을 받고 나니 반신 3900엔에, 번역기를 믿을 수 있다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린다는 설명이 적힌 플랜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덜컥 걱정이 되더군요. 하지만 낙장불입이니 이제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여담으로 이번 그림도 이전 리퀘스트와 같은 분이 신청서 접수 다음 날 합류 기능으로 같은 금액을 작가에게 지불했습니다).
이번 그림은 33일만에 받았는데, 예상한 느낌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름 나쁘지 않네요. 이번 건보다 비싼 금액으로 의뢰한 그림도 이것보다 미묘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commission#ドールズフロントライン #ドルフロ pic.twitter.com/39kuw7HI0Q
— ChargePro (@OUTSIDER_CHARGE) August 2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