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루머 공장에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애플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출시한다고 주장했던 AirPods 3세대가 지난 10월 행사에서 드디어 출시되었습니다.
해당 제품이 정식 출시되기 전부터 커뮤니티에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특히 정식 출시해 가격이 발표된 이후로는 AirPods Pro도 할인가로 20만원대 초반까지 내려온 적이 있는데 노이즈캔슬링(ANC)도 지원하지 않는 오픈형을 25만원에 구입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비난에 가까운 비평이 적지 않았습니다. 제품 정가와 출시 2년 후 시장 할인가를 1:1로 비교하는 게 온당한가라는 반박 이전에, 인이어형이 불편한 사람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척수반사적 반응은 개인적으로 불쾌하더군요.
(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까마득한) 유선 이어폰 시절에도 오픈형 대비 음질이 좋고 바깥 소음을 막아준다는 커뮤니티 글에 혹해 인이어 이어폰을 사용해 보았지만, 귀를 막은 채로 음파를 욱여넣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압에 적응하지 못해 사용을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 상대적으로 작은 오픈형 이어폰 시장에서 평이 좋았던 제품-B&O A8, 크리에이티브 오르바나 에어 등-을 단선될 때까지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요.
무선 이어버드로 시장 주류가 넘어간 이후에도 오픈형 가뭄은 여전한데,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삼성전자 갤럭시 버즈 라이브 정도가 오픈형이더군요. 심지어 애플 산하 브랜드인 Beats에서도 무선 이어버드는 인이어형만 판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에서 오픈형 이어폰을 꾸준히 만들어주는 것이 소비자로서 반갑고, 비유적 표현으로 제 카드 결제로 사측에 '신임 투표'를 행사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본 제품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번 AirPods은 이전 세대와 달리 무선(유도식 충전)/유선 충전 케이스 두 종류가 아닌 MagSafe 지원 단품으로 출시하였습니다. 참고로 Pro의 경우 MagSafe 지원 케이스로 리뉴얼했고, 가격 인하해 계속 판매하는 2세대는 유선 충전으로 일원화했습니다. 이전 제품의 경우 몇 만원 저렴한 유선 충전 버전을 구입해 왔기 때문에 체감 구매가가 조금 오른 셈이 되었네요.
발매 당시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 기세의 대기열로 악명 높았던 AirPods 1세대는 2017년 5월, 2세대는 2019년 5월에 구입하였습니다. (위기는 여러 번 있었으나) 개별 유닛이나 본체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배터리 내장 제품이다보니 2년 초과 사용으로 인해 줄어든 유닛 수명이 일상적 사용에서도 신경 쓰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현대카드 모바일 프로그램은 가맹점 글자수 파싱할 때 예외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목록에서는 글자가 깨져서 나오는군요(개별 항목에서는 제대로 나옴). pic.twitter.com/ywh5ydnhKp
— Paranal (@nagato708) November 10, 2021
10월 행사 발표 후 한국 정식 발매를 기다리는 동안 '3세대가 나오더라도 2세대가 고장난 뒤에 사야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11월에 올라온 데서 짐작하셨겠지만, 지난 10일 한국에서 3세대 예약구매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주요 오픈마켓 판매처 혜택을 비교해본 뒤 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AirPods을 출시 전 예약주문 단계에서 구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예약한 이어폰을 기다리는 동안 이를 계기로 유도식 충전 라이프스타일을 도입해볼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애플 MagSafe 충전기 가격이 부담스러워 Qi 충전기를 알아보았지만, 평판이 괜찮은 회사의 제품은 가격이 제법 나가더군요. 게다가 요즘 제삼자 충전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이기도 해서 '굳이 유도식 충전기를 산다면 iPhone 15W 고속충전까지 지원되는 MagSafe 충전기를 사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에 현 시점에서는 구입을 보류했습니다.
제가 AirPods 3세대 예약 주문한 곳에서는 19일 이후 순차배송이라고 해서 빨라야 토요일에나 받겠구나 생각했는데, 오늘 오전 배송 예정이라는 알림이 도착하더군요(다만실제 상품 인수는 저녁에 이뤄짐). pic.twitter.com/Y47ToAEDRL
— Paranal (@nagato708) November 18, 2021
주문 당시 소개 페이지에서 19일(금) 이후 배송이라고 안내해 출시일 수령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지난 목요일 제품을 발송했다는 카톡이 조용히 날아오더군요.
인터넷이 생기며 사례 공유가 쉬워졌을 뿐 ‘서비스센터에 가면 멀쩡해지는 기기’와 ‘새 기기를 사고 싶을 때/사고 나서 바로 고장나는 기존 제품’에 대한 경험은 이전에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흐름 상 언박싱 사진이 나와야 하는데 뜬금없는 이야기로 이 문단을 연 이유는 3세대 제품 수령일인 지난 금요일, 후자의 상황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전날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오히려 3세대와의 비교 위해 평상시보다 오래 사용-2세대 오른쪽 유닛에서 돌연 왜곡된 소리가 들리더군요. 기기와 연결할 때 나는 ‘뚜둥’ 소리가 비유하자면 권역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잡히는 FM 라디오처럼 작게 들리고 거기에 더해 잡음이 수놓아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 블루투스 간섭이라 판단해 별 고민 없이 유닛을 케이스에 다시 넣었다 꺼냈지만 잡음은 그대로였습니다. 이후 통상적 문제 해결법(iOS 쪽 블루투스를 토글, AirPods 리셋)을 시도해 보았지만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이 글을 업로드하기 전 다시 확인해보니 잡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음압은 정상인 왼쪽 유닛 대비 대비 절반 정도네요.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겠지만, 언박싱 사진으로 이전 세대와의 비교샷을 넣기 위해 전날 밤 평상시보다 조금 열심히 케이스와 유닛을 닦은 게 독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따름입니다. 다만 2017년 처음 AirPods을 구입한 이래 마른 천과 이쑤시개로 '이물질'을 제거하여 왔지만 이처럼 비가역적인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당황스럽습니다(애플 공식 AirPods 청소 지원 문서는 유닛 스피커/마이크 망 청소에는 마른 면봉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AirPods 3세대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종이 봉인이 적용되어 있군요. pic.twitter.com/bSYUGofO7Q
— Paranal (@nagato708) November 19, 2021
이번 제품은 케이스부터 유닛까지 AirPods Pro 디자인을 준용하였습니다. 여담으로 사진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새 제품과 비교하니 AirPods 2세대 케이스의 흰색이 살짝 황변되어 있었습니다.
힌지 개폐 느낌은 두 제품 간 큰 차이가 없지만 케이스가 가로로 길어지면서 이전 세대 대비 피젯토이로서는 별로겠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생각해보니 피젯토이라는 말도 요즘은 듣기 힘들어졌네요). 또한 길쭉한 모양으로 인해 2005년 iPod nano 1세대로 키노트로 유명해진 바지 오른쪽 동전 주머니에 넣으려면 짧은 쪽으로 세워서 넣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전 케이스를 열던 습관이 남아 있어 짧은 쪽을 위로 향한 채로 케이스 개폐부를 손끝으로 찾으려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90도 돌리고는 합니다.
상태 LED 표시는 케이스 전면에 있는데, 유도식 충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 쪽이 편의성이 더 좋았습니다. 이전 제품은 LED가 케이스 안쪽에 있어 충전 상태를 확인하고 싶으면는 케이스를 열어둔 채로 연결하거나, 근처에 있는 iOS 기기 배터리 위젯으로 충전중인지 확인해야 했으니까요.
유닛 모양 또한 2세대까지는 4분음표였다면 3세대는 부풀어오른 쉼표처럼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귀에 착용했을 때 느껴지는 압박점 또한 달라졌지만, 반나절 정도면 새 포인트에 적응되어 이물감 등의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EarPods 이래로 이어저 내려온 유닛 디자인의 변화로 착용감이 유의미하게 저하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으므로, 의구심이 든다면 애플 온라인 스토어처럼 환불이 쉬운 구매처에서 구입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유닛 하단 막대 부분에 있는 포스 센서는 Pro에서 도입되었을 때부터 2세대까지의 가속계를 이용한 두드리기 방식보다 좋다는 평이 주류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클릭 별 기능이 고정되어 있어 이전보다 퇴보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Pro의 경우 다른 기능은 고정되어 있지만 길게 누르기는 ANC 토글과 Siri 호출 중 하나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전 세대에서도 유닛 탈착으로 오디오 재생/중단을 조절할 수 있고, 2세대부터는 음성으로 Siri 호출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에서도 실사용에서 딱히 유닛을 '후려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용성의 향상이 그만큼 와닿지 않더군요. 센서 작동될 때마다 '딸각'하는 소리 피드백이 있어 진짜 버튼을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건 좋았네요.
듣기 경험으로 넘어가자면, 음악의 경우 제품 페이지에서 강조하는 적응형 EQ 때문인지 전작 대비 저음이 강조된 걸 첫 음에서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래 두어 곡을 들었을 때에는 나 몰래 EQ에서 저음을 당겨 올려놓은 듯 조금 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사람의 감각기관은 참으로 간사해 직후 같은 노래를 (왼쪽 유닛만 남은) 2세대로 들어보니 음 한 덩어리가 사라진 느낌이 들더군요.
3세대에 추가된 공간 음향 기능은 AirPods 설정 화면에서 들을 수 있는 데모 효과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뒤 바로 비활성화해 덧붙일 내용이 없습니다. 기믹이라고 평가절하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이어폰을 끼고 소비하는 콘텐츠인 팟캐스트나 음악에서는 큰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평가를 보면 처음부터 서라운드 음향을 고려한 영상물을 볼 때에는 괜찮다고 하는데, 향후 Apple TV+나 Netflix처럼 공간 음향을 지원하는 서비스 영상물을 감상할 일이 있으면 활성화해서 사용해 볼 생각은 있습니다.
반면 팟캐스트와 전화의 경우 새 제품에 대한 흥분이라는 요소를 제하면 유의미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제품 페이지에 따르면 FaceTime에는 새 코덱(AAC-ELD)이 적용되었다고 하지만 이전에도 FaceTime 음성 통화는 일반 셀룰러 대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였네요.
마이크 성능은 어떻게 테스트해볼까 고민하다 한국어 받아쓰기로 같은 문단을 받아 적도록 해 보았는데, 이전 세대 AirPods이나 iOS 기기 내장 마이크와 똑같은 부분을 틀리는 걸 보면 적어도 음파 자체는 동등하게 인식하는 걸로 보입니다.
유닛의 연결 범위 한계는 기존 제품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AirPods SoC 자체는 H1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1년 워런티 기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넉넉하게 산정되어 있습니다. 생산일자 기준으로 산정해 재고품의 경우 구매 영수증으로 구매일 소명해야 하는 사례가 기억나는데 그 반대 사례인 듯? pic.twitter.com/Fx57U5xvol
— Paranal (@nagato708) November 19, 2021
초안에서는 매 번 언박싱 사진으로 끝나는 제품 구입글을 좀 더 알차게 쓰겠다며 반나절~하루동안 2세대와 3세대를 번갈아 사용해보고 차이점을 살펴보는 문단을 추가하려 했지만, 위에서 말씀드렸듯 2세대 오른쪽 유닛이 돌연사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불발되었네요. AirPods 3세대를 리뷰한 전문 리뷰어 영상을 추가하는 걸로 갈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