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써서 슬슬 노후되기 시작해 어느 정도는 명분이 있던 마우스와 달리 이번 키보드는 전혀 구입할 이유가 없던 물건이었습니다. 그저 커뮤니티 핫딜 게시판에 올라온, 알리에서 기계식 키보드를 8.64달러(약 1만2천원)에 판다는 글을 보고 홀린 듯이 주문했을 뿐이지요.
굳이 명분을 단다고 한다면, 기계식 키보드가 컴퓨터 '덕후'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중국 발 커스텀 키보드 열풍이 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멤브레인이 개발되고 난 이후로는 기계식 키보드를 내 돈 주고 사 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다는 것 정도?
2월 6일 주문하고는 으레 선박 배송일거라 생각해 배송 조회도 않고 있었는데 항공 배송이어서 2월 13일 수령했습니다. 통관 자체는 지난 9일에 완료되었으니 설 연휴가 없었더라면 주문한 같은 주에 받을 수도 있었겠네요. 뜬금없이 목록통관이 아닌 일반통관이었던 건 어떤 어른의 사정이었을까 궁금하긴 했습니다.
알리 판매자도 쿠팡처럼 아무런 보호 장치 없는 회색 비닐봉투에 배송하기 때문에 상자는 찢어짐과 찌그러짐이 있었지만 제품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최근 한 유튜브에서 제품 만듦새가 괜찮은지 짐작해보려면 박스나 본체 인쇄 상태(제품 번호 등)을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상자 만듦새는 나쁘지 않더군요. 정작 상품 페이지에도 제품명을 표기해놓지 않았던데, 상자나 제품 표기에 따르면 Ziyourang K68이라는 모델명.
상자 내부에는 본체 외에 설명서와 키/스위치 제거 장비, 여분 스위치 두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상술했듯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홍보 페이지는 이 제품을 60% 배열이라 적어 두었지만 방향키가 뒤집힌 T 모양이고 (풀배열 기준) 방향키 위에 있는 키들이 우측에 있는 걸로 미루어 볼 때 65% 키보드라 하는 게 적확하겠지요.
무선(2.4Ghz) 동글과 블루투스 2개를 합쳐 총 세 군데에 연결이 가능합니다[Fn+Q(2.4GHz)/W/E(블루투스)로 전환]. 수 있는데 가격 때문인지 충전식이 아닌 AAA 배터리 두 개가 들어는 방식인데요(설명에 따르면 6개월 사용 가능). 저가형이어서인지 LED라고는 연결 장치 선택을 확인시켜주는 세 개 뿐인데, 소개 페이지에서는 그 덕에 AAA 배터리로도 긴 수명을 보장할 수 있다고 자랑하더군요. 개인적으로 '게이밍 LED'는 싫어하기 때문에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
뒤집어보면 전원 스위치와 배터리 도어, 2.4Ghz 동글 홀더가 보이는데요. 동글은 특이하게도 일부 USB 스틱처럼 한 쪽은 A포트이지만 '몸통'의 플라스틱을 벗겨 내면 C 포트가 있는 형태입니다. 메이저 주변기기 회사 제품조차 본체에는 충전/유선연결 용으로 USB-C를 사용할지언정 본체 연결에는 USB-A가 기본인 걸 생각하면 상당히 전향적인 구성입니다.
회계 담당자는 아니지만 우측 숫자 키가 없으면 불편한 사람이어서 항상 풀배열만 구입하는데, 테스트하기위해 PC에 연결해 써 보니 '데스크셋업'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왜 작은 키보드를 선호하는지 알겠더군요. 물리적으로 크기가 작은 데 더해 풀배열 특유의 빈 공간 없이 키로 꽉 차 있다는 그 자체가 시각적으로는 좀 더 오밀조밀한 느낌을 주니까요.
처음에 수령했을 때에는 먼저 iPad에 연결해봤는데, 따로 PC/Mac 전환 버튼은 없고 Win 버튼이 Cmd 버튼으로 대응되는 '호환' 모드로 작동하며, Fn 키 조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미디어 기능키도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다만 PC 사용을 상정했는지 모바일에 최적화된 기능키는 없어).
이후 블루투스 모듈이 없는 PC에는 동봉된 동글로 연결해봤는데 별 문제 없이 작동합니다. 사실 게임같은 반응성이 중요한 무언가를 해 봐야 동글/BT 차이를 알 수 있을텐데 그런 것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어서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아. 애초에 그런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저렴한 키보드를 구입하지는 않기도 할 테고요.
주로 펜타그래프만 쓰던 사람에게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키보드 자체의 높이였습니다. 펜타그래프와 달리 물리적으로 스위치부터 이를 받쳐주는 프레임까지 넣어야 하니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겠지만, 대충 iPhone 세 대는 쌓을 수 있을만큼의 높이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키보드 스위치에 대해서는 판매 페이지에도 '적축'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더군요(제품명으로 다른 판매처의 다른 상세페이지를 찾아보니 3.8±0.2mm로 고시). 이런 쪽으로는 전혀 정보가 없어 그냥 또각또각 소리가 나고 펜타그래프 대비해서는 좀 꾹꾹 눌러줘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정도로밖에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 그리고 딱 걸리는 부분이 없는 걸로 봐서 리니어 계열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따름.
이 글을 준비하면서 해당 제품 관련 글을 읽어보다 해당 레이아웃 키보드의 가장 큰 단점이 '~'를 입력하려면 Fn+Shift+Esc를 눌러야 하는 거라고 했는데, 의식하지 않고 글자를 입력해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요. 그에 더해 의외로 'Del'키가 오른쪽에서 두 번째라는게 은근히 불편했는데, 어차피 표준 배치가 아닐 바이야 차라리 Home과 자리를 바꿔 백스페이스 옆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iOS에서는 불가능하지만 PC 붙박이로 사용한다면 소프트웨어로 둘 위치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도 합니다.
로지텍 사의 펜타그래프 키보드 MX Keys S를 사서 만족하고 있는만큼 메인 키보드로 쓸 생각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구입했으니 당분간은 iPad 전용 키보드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무게는 스펙 상 530g으로 로지텍 MX Keys mini보다 조금 더 무거우니 휴대용은 아니지만 실내에서도 PC 앞에서만 사용하는 건 아니니까요. 안드로이드 전용이어서 지금도 애물단지인 삼성 블루투스 키보드와 달리 여차하면 플랜 B 제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기판이 돌연사하지 않는다면 가성비가 나쁘지 않을 테니까요.
p.s. 이 글은 해당 키보드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