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키보드/마우스 세트를 2017년에 구입한 뒤 몇 번의 수리를 받았지만 2021년 워런티가 지난 시점에서 고장난 후, 브랜드 제품에 회의감이 생겨 저렴한 멤브레인 키보드를 구입해 2년간 쓰고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MS 입력 하드웨어 부문은 올 초 서피스 주변기기 수준으로 격하돼) 나름 게임 최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인지 프레임은 컸지만 RGB가 번쩍번쩍 들어오는 건 아니어서-우상단에 토글할 수 있는 적색 LED가 있기는 함-그럭저럭 만족하고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얼마 전부터 갑자기 PC를 사용하다 iOS 기기에 뭔가를 입력할 때 참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macOS를 쓰면 클립보드까지 공유할 수 있지만 윈도우 PC를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차선책으로 블루투스 지원하는 키보드가 있으면 바로 전환해서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때까지도 진지하게 키보드를 새로 사야겠다는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주말(3일) 아침 컴퓨터 책상을 정리하다 갑자기 키보드가 참 더러워 보이더군요. 물티슈로 종종 닦아 주었지만 윗면만 스칠 뿐이니 키캡 측면에는 먼지가 제법 들어가 있었습니다. 마침 휴일이고 하니 키를 하나하나 빼고 키보드 바닥에 쌓인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낸 후 키 측면까지 하나씩 닦고 있노라니 갑자기 '키보드를 새로 살까?'라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키캡을 다시 끼운 직후 로지텍 MX KEYS S 가격을 찾아보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상술한 2021년 키보드 교체 시점에 2019년에 출시한 전작 로지텍 MX KEYS를 구입해볼까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때에는 고가 제품에 대한 불신이 남은 상태여서 차라리 저렴한 걸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후보에서 탈락했지요. 그러나 지난 2년 간 저렴한 블루투스 키보드에 고통받은 경험을 반면교사로 비싼 제품이 정말 그 값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마침 지난 6월 Unifying 동글 대신 Bolt를 제공하는 마이너 업데이트 제품인 MX KEYS S가 출시했음을 당시 기술 유튜브에 스폰서 영상이 올라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최저가 검색 사이트에서 가격을 검색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픈마켓 카드사 할인 7%까지 끼워 인터넷 최저가보다 조금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더군요.
그렇게 이틀만에 키보드가 도착했습니다. 처음 상자를 뜯었을 떄의 느낌은 '묵직하다'였습니다. 애초에 휴대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상자에 따로 보강재가 있어 이렇게 무겁나 싶을 정도였네요. 참고로 스펙상 무게는 810g로,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 스테디셀러이지만 보강판 때문인지 동급 경쟁사 제품 대비 묵직한 K380이 423g이니 거의 두 배입니다. MX 라인업 텐키리스인 MX KEYS MINI가 506g인걸 보면 애초에 설계 자체를 묵직하게 한 모양입니다.
충전/유선 연결용 USB-A to C 케이블과 무선 동글인 Logi Bolt가 별도의 작은 상자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Bolt가 2021년 Unifying을 대체하며 나온 규격인데 어째서 USB-C가 아닌 A인지 궁금하네요(공식 페이지에도 USB-A 단독이라고 명시함). 특성 상 기업용으로 마케팅해야 하는데 USB-C 전용이면 곤란해서인가 짐작만 해 볼 따름입니다.
키보드 색은 짙은 색(그래파이트)과 밝은 색(페일그레이)가 있는데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밝은 색으로 골랐습니다. 애초에 지금 쓰고 있는 G304가 흰색이기도 하고, 책상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흰색이 많았기 때문에 이 쪽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컴퓨터 테이블에 놓고 곰곰이 보고 있으니 기시감이 느껴져서 뭘까, 했는데 약간 애플 Magic Keyboard 감성이군요. 알루미늄 색 바탕에 연회색 키, 모서리에 있는 키는 둥글게 마무리, 심지어는 가격대까지 비슷하네요.
보통 키보드는 윈도우/맥용 레이아웃 제품을 따로 만드는 걸로 아는데, 로지텍은 한 종류의 키보드에 Cmd/Alt, Option/시작을 동시에 표기해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키보드가 디바이스 종류를 인식해 알아서 대응하는 걸로 보이는데, 예를 들어 iOS 기기에 연결하면 자동으로 '맥 레이아웃'이 됩니다.
Bolt 동글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키보드는 바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커스터마이징 프로그램인 Logi Options+를 설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메시지가 뜨는데, 이런 애드온 프로그램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 키보드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설치하는 것이 좋겠더군요.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키보드 배터리 잔량-배터리 내장형으로 USB-C 단자로 충전 가능-을 확인할 수 있고 기능 키 설정 등을 할 수 있습니다. 기본 설정으로는 F키보다 기능 키가 우선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 부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참고로 Fn Lock은 프로그램 없이 Fn+Esc 조합으로 변경 가능).
백라이트는 바로 비활성화했습니다. 어두운 조명에서 작업하는 분들이라면 필요하겠지만, 제 PC 사용 환경은 전형적인 '사무실 조명'이 머리 위에 있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에서 사용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펙에 따르면 백라이트를 끌 경우 6개월동안 사용이 가능하다고)
처음에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스크린캡처에 사용하는 Print Screen 버튼이 없다는 겁니다. 그 대신 전용 버튼이 있는데, 기본 설정으로는 '캡처 도구'를 띄우더군요. 이 부분은 위에서 소개한 Logi Options+에서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F12 옆에 키가 한 개 더 있더군요. 이걸 눈치챈 건 구입하기 전 벼락치기 리뷰 탐독할 때도 아니고, 생각보다 무거운 키보드 실물에 놀랐을 때도 아닌 실제로 키보드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Fn 전환으로 F 키를 기본으로 올렸는데도 음량이 올라가 '뭐지?'하고 다시 키보드를 꼼꼼히 들여다보니 백스페이스 위에 있는 키가 F12가 아니더군요. 하루에 한 번은 잘못 눌러 음량을 높이는 통에 차라리 음소거가 낫겠다 싶어 Logi 프로그램에서 설정을 바꿔 버렸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오 타이핑이 계속 많으면 여기에 F12를 할당하는 게 나을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기기 전환의 경우 오른쪽 상단에 있는 버튼을 이용하면 원터치로 가능합니다. 기본적으로 1번은 Bolt 동글과 연동되어 있고, 블루투스 연결을 추가하려면 보통 이런 제품이 그렇듯 해당 번호를 오래 누르고 있으면 점멸 상태가 됩니다.
상술했듯이 이 키보드를 탐낸 이유 중 하나가 키보드 하나를 여러 기기에서 버튼 한 번으로 전환해 쓸 수 있는 기능 때문이었습니다. 전문적으로는 KVM까지 끼어들어야 하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iOS 기기에 뭔가 바로 입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iOS 기기에서의 키보드 사용 경험은 여느 블루투스 키보드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능 버튼도 대부분 작동하는데, 의외로 음소거 버튼이 안 되더군요. 다만 두 플랫폼 입력을 한 키보드에 합쳐놓으니 생각치 못했던 단점이 있는데, 한영 전환이나 기본 단축키 등이 애플 플랫폼과 MS 플랫폼이 다르다 보니 다른 플랫폼에서 다른 단축키를 누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군요(다행히도 저만 그런 건 아닌지 이런 이야기를 꺼내자 지인께서 비슷한 취지의 블로그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키감은 처음 설치해보고 한 문장 이상 글을 써 보는 시점에서 왜 이 키보드가 사무용 끝판왕 중 하나로 불리는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더군요. 무게 때문인지 키 자체가 움직이는 소리 외의 '잡소리'가 없는데, 저렴한 블루투스 키보드는 조금만 세게 치면 플라스틱 때리는 소리가 나서 좀 불안할 정도인 것과 대조적이었네요. 도서관에서 쓸 수 있을 정도의 무소음은 아니지만 생활 소음이 있는 환경에서 키 소리가 거슬리지는 않을 듯 합니다.
다만 이전에 사용하던 키보드가 키캡 높이가 있는 멤브레인이어서인지 사용 첫 주인 지금은 처음 키보드에 손을 올릴 때 손가락이 헤메일 때가 있어. 키 배열은 표준에 가깝기 때문에 좀 더 사용하면 손가락이 적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터리는 내장형으로 USB-C 플러그로 충전이 가능한데, 처음 수령했을 때에는 60% 충전되어 있었습니다. USB 어댑터에 두어 시간 물려서 100%까지 충전했는데 백라이트를 쓰지 않으면 6개월은 간다니 그렇게까지 자주 충전할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반쯤 충동적으로 구입한 로지텍 MX KEYS S. 이전 키보드가 멤브레인이어서 아직은 적응 중이지만, 첫 인상은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사진은 같은 회사의 흰색 G304 마우스(소문과 달리 2년동안 더블클릭 증상이 나타나지 않음)와 투샷. pic.twitter.com/hFO4saaKYZ
— Paranal (@nagato708) September 6, 2023
어쩌다 보니 요즘 PC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정작 본체는 윈도우 11도 설치할 수 없는 구형 제품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네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키보드는 본체를 바꿔도 계속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