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스마트폰 케이스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해 그 날 기분이나 활동 동선에 따라 가끔씩 사용하는데, 이번 주에 그 케이스 덕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패딩 주머니 높이에서 길바닥으로 폰이 떨어졌기 때문인데요.
그 자리에서는 경황이 없어 당장 깨진 데가 없는지만 확인했는데 현장을 벗어나 찬찬히 살펴보니 애플 가죽 케이스가 충격을 흡수해 부딪힌 부분은 일부러 헤지게 만든 청바지처럼 갈렸더군요. 처음에는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주머니 간수도 못 했을까 자책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 날따라 케이스를 장착해서 이 정도에서 수습되었구나라며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 역할을 하고 운명한 케이스는 폐기한 뒤 새 케이스를 구입하려고 여러 유명 브랜드 케이스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반쯤 장난으로 '오픈마켓에 정품 케이스 할인 행사가 있나?' 하며 리셀러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그 날따라 11번가에서 실리콘 케이스를 50% 할인하더군요.
이전에도 말씀드렸듯 애플 실리콘 케이스는 테이프 클리너(통칭 돌돌이)보다 먼지를 더 잘 빨아들이는데다 가죽 케이스와 달리 일반적 사용 시에 예쁘게 낡지도 않아 선호하지는 않지만, 마침 할인이 있기도 하고 가죽 케이스를 두 번째 사는 것도 끌리지 않아 잠깐의 고민 후 구입 버튼을 눌렀습니다.
하루만에 도착한 케이스는 익숙한 포장에 담겨 왔는데, 공식 케이스는 신제품 출시할 때 찍어낸 물량이 다 팔리면 단종인지 생산일이 2021년 9월이더군요. 국화과 천수국속을 지칭한다는 '마리골드'는 무슨 색일까 주문할 때부터 궁금했는데(다른 색은 품절) 부족한 어휘력으로 설명하자면 채도를 줄인 자몽 색깔입니다. 다만 저의 제한된 상상력으로는 이 색에서 수국이나 금색을 어떻게 떠올려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실제로 사용해보니 본체의 미드나이트와는 생각보다 잘 울렸지만 (애초에 카메라 섬 부분만 노출되기도 하고요) 그 위에 녹색 MagSafe 카드지갑을 붙이면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지더군요. 너무 끔찍해 사진도 첨부하지 않았는데, 될 수 있으면 함께 사용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여담으로, 여분의 케이스가 없던 건 아닙니다. 이전 문단에서 인용한 블로그 글에도 짧게 언급했듯 작년 12월 반값 특가라는 말을 듣고 애플 투명 케이스를 구입했었거든요. 하지만 사용 경험이 너무 좋지 않아 대안으로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할인 행사에서 마지막까지 재고가 남아 있던 시점에서 뭔가 잘못되었구나 눈치챘어야 했나 싶기도).
일각에서 비누처럼 미끄럽다고 싫어했던 iPhone 6(현행 SE에서도 사용하는) 디자인을 케이스 없이 쓰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이 케이스는 무슨 코팅을 입혔는지 조금이라도 유분이 묻으면 미끌거려 케이스를 끼고 있는 게 더 위험하게 느껴질 지경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