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정신건강을 위해 애플 관련 루머를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는데, 기술 언론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청취하다보면 아예 정보를 끊고 살 수는 없더군요. 그렇게 건너건너 들은 루머를 조합해보니 올해 iPhone 관련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 작성 시점인 7월 말 기준) 루머에 따르면, 우선 2022년 iPhone은 전세계적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격이 100달러씩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달러 가격이 동일하더라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원/달러 환율 때문에 원화 기준 가격은 오르는 것이 기정 사실-올 여름 출시한 M2 SoC MacBook Air는 이미 1300원대 후반 환율 적용-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소식이죠. 설상가상으로 올해 (수식어 없는) 기본 iPhone은 SoC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2021년부터 사용한 A15 SoC를 채용힌다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물론 루머는 루머일 뿐, 2022년 9월 올해 iPhone 제품군이 나와 봐야 아는 일이니 앞서 고민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사람이란 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법인지라, 작년 발매 당시 역대급 밸런스라고 칭찬이 자자했던 13 일반을 1년 사이클 교체로 구입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더군요.
이번달 초 iPhone 13 시리즈가 10% 후반대 할인으로 풀린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진지하게 기기 교체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루 자고 나서 냉정해진 머리로 다시 고민해보면 '9월 행사가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싶어 이대로 흐지부지되는구나 싶었지요.
하지만-글 제목을 보고 짐작하셨겠지만-외부 상황 때문에 갑작스럽게 가상의 고민이 냉혹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7월 24일(일), 아버지께서 쓰시던 iPhone 8이 세탁기 풀코스 체험으로 영면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순간 눈 앞이 깜깜해졌지만 '안 쓰는 전자기기' 통을 열어 다행히도 iOS 15까지 업데이트가 가능한(iOS 16은 iPhone X/8부터 업데이트 제공) 6s를 발굴해 내 급한 불은 껐습니다.
그런데 이걸 세팅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걸 몇 달동안 쓰시게 하는 게 맞나 싶더군요. 그래서 iCloud 마지막 스냅샷으로 복원한 6s를 드리며 일단은 이걸 사용하시고 제가 쓰던 12를 가져가시는 게 어떻겠느냐 여쭤 봤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적었지만, 이후 네 사정이 괜찮으면 그렇게 하라는 사실상의 동의를 어머니를 통해 전하셨습니다.
어느정도는 사리사욕이 담긴 제안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실용적인 결정이기도 했는데 6s가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설정에서 보여주는 배터리 상태가 80% 중반대임에도 배터리가 밑 빠진 독처럼 새어나가 오랫동안 쓸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필요할 때 딱 맞는 핫딜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좋은 조건으로 구입할 수는 없었지만, 유명한 리셀러 몇 곳을 검색해보니 11번가에서 쿠폰 적용해 10% 할인하는 딜이 있더군요(카드사 제휴몰 경유 포인트 2.5%까지 알뜰하게 챙겼습니다). 이왕 중간에 사는 김에 올해 3월 출시한 '국방' 그린을 사 볼까 했지만, 품절이어서 미드나이트로 구입했습니다.
📊: 약 100만원을 결제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일시불 결제할 잔고는 있다고 가정)?
— Paranal (@nagato708) July 24, 2022
처음에는 신용카드 6개월 할부 결제를 생각했지만, 최근 몇 달 할부를 남용하는 기분이어서 신용카드 대신 1% 적립-마침맞게도 100만원 한도-을 제공하는 체크카드에 몰아 주는게 나을까 고민되더군요. (위에 첨부한) 트위터에 올린 설문은 얄궂게도 동률이 나와서 도움이 되지 않았고, 혼자 좀 더 고민한 뒤 체크카드로 결제하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손에 들어와 있는 iPhone 13. 덕분에 Apple TV+ 3개월 무료 오퍼를 받을 수 있겠네요. pic.twitter.com/zCD5ryP9ah
— Paranal (@nagato708) July 25, 2022
당연히 화요일에 도착할 거라 예상했지만, 월요일 오전 iPhone 13이 담긴 택배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어떤 업체를 떠오르게 하는 '슈팅배송' 대상 상품이라고 표기해 피식 웃었는데, 일요일에 주문해도 하루배송을 제공하는 걸 보니 껍데기만 벤치마킹한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13 상자(좌측)는 환경을 생각해 작아진 12와 같은 크기입니다. 다만 박스 전면 렌더링이 비슷한 디자인을 2년 연속 쓸 때 으레 그러하였듯 전면에서 후면으로 바뀌었네요. 2022년 5월 생산품으로, 그 때문에 7월 출시된 iOS 15.6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12에서 데이터 이전하기 위해 업데이트부터 진행해야 했습니다. 베이스 모델이 16GB이던 시절부터 항상 최소 용량으로 구입하는데, 13부터 128GB가 최저 사양이 되면서 4년만에(2018년 iPhone 8/X부터 64GB로 상향) 스마트폰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나는 부수적 효과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미드나이트는 생각보다 남색 발색이 강해 놀랐습니다. 작년 13 발매했을 때 리셀러에서 13/13 Pro 전시품을 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색감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사양을 보면 13은 12 대비 두께는 0.25mm, 무게는 10g 증가하였지만, 해당 수치를 의식하고 두 기기를 양 손에 들어봐도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사진으로도 알 수 있는 눈에 띄는 차이점은 후면 카메라 배치가 직선에서 대각선으로 바뀐 것과 전면 상단 센서 하우징이 2/3 수준으로 작아진 부분입니다. 하우징 크기 축소는 금방 익숙해졌는데, 재배치 과정에서 수화기 그릴이 본체 상단에 바싹 붙은 게 의외로 신경 쓰이더군요. 사진으로는 금방 알 수 없었던 차이점을 꼽자면 사이드 버튼 위치가 눈에 띄게 내려갔다는 점이었습니다. 볼륨 내림 버튼은 조금 과장하면 중간에 붙어있는 느낌입니다. 어차피 직접 보고 누르는 일은 거의 없는 버튼이지만, 글 쓰는 시점에는 서너번에 한 번은 손가락 끝에 버튼이 느껴지지 않아 흠칫하고는 합니다.
iOS 기기 간 데이터를 옮겨 주는 기능인 '빠른 시작'은 해당 옵션이 생긴 이후 매 번 시도해보지만(iOS 기기를 [재]설정하면 기본 옵션으로 선택되어 있기도 하고요) 성공한 적이 없어 결국 가장 오래된 수단이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iTunes 암호화 백업-복원으로 데이터를 옮겼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전해도 몇몇 금융 프로그램은 재설정을 요구합니다만,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게 세팅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Apple Music 동기화를 켜고 음원 다운로드로 음악 라이브러리를 채워. 중구난방인 곡명 등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기껏 프로모션으로 무료 사용중이면서 가끔 신곡만 스트리밍으로 체리피킹하는 건 아쉽기도 했고요(AAC 256kbps인 걸로 아는데 MP3 320kbps보다 용량이 작은 듯?) pic.twitter.com/h1rOT7MSUw
— Paranal (@nagato708) July 26, 2022
다들 스트리밍으로 노래를 듣고, 이제는 CD 플레이어가 아이돌 굿즈로 팔리는 시대이지만 예전부터 말씀드렸듯 저는 꾸준히 MP3를 리핑해 수동으로 iPhone에 음원을 넣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료 Apple Music 구독 기간이 끝나 11월까지는 Apple Music에서 라이브러리 추가 후 음원 다운로드하는 걸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어 이전까지는 라이브러리와 통합하지 않고 Wi-Fi 환경에서 스트리밍으로만 사용했지만, (지금은 막힌 걸로 아는) 무료 쿠폰 쌓기로 구독 상태이면서 이를 묵히는 것도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운로드하는 파일이 AAC 256Kbps이어서인지 비슷한 갯수의 음악을 추가해도 로컬에서 사용하는 MP3 320Kbps 대비 차지하는 용량도 조금 줄어든 느낌입니다.
같은 피사체를 12와 13으로 찍어 봤습니다(클릭하면 Flickr에서 원본 파일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공식 사양에 따르면 HDR 버전이 3과 4로 다르다는데, 극단적인 조명 환경이라면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내에서 제품 인증샷 찍는 정도로는 눈에 띄는 차이는 없는 걸로 보입니다.
케이스 사용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TPO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두개는 갖추고 있어야지 싶어 가죽 케이스를 주문했습니다. 왜 세 종류의 정품 케이스 중에서 가장 비싼 가죽을 선택했느냐고 물으신다면, 실리콘 케이스는 경험 상 주머니에 넣으면 어지간한 먼지 돌돌이보다 먼지를 더 잘 붙이기 때문이라 답하겠습니다. 가죽 케이스는 판매자인 애플도 인정하듯 이염되고 조금만 써도 까지기 때문에 케이스를 모실 케이스가 필요할 정도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가성비만 따지려면 차라리 투명 케이스 1+1+1(배송비 무료) 상품을 구입해 달마다 바꿔 쓰는 게 더 좋을 테니까요.
TPO에 맞춰 가끔씩 쓰기 위해 가죽 케이스도 구입(정품 케이스는 많이 팔리지는 않는지 작년 9월 생산품이군요). 가죽 케이스도 미드나이트지만 제가 본체 색상으로 예상했던 ‘한없이 검정에 가까운 남색’에 가까운 느낌. pic.twitter.com/7LR3twh6UV
— Paranal (@nagato708) July 27, 2022
역시 비싼 케이스여서 불티나게 팔리지는 않는지 2021년 9월 생산분. 케이스도 본체와 동일한 미드나이트인데 이 쪽은 아무리 조명을 잘 비추어봐도 한없이 검은 색에 가까운 남색.
(iPhone 13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스노우볼을 뭉치게 한 씨앗이었던 아버지 iPhone 최종 교체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3 수령한 날 기기 이전을 마치고 12를 리셋한 뒤 SKT 사용 중인 아버지 USIM을 끼웠더니 처음에는 인식이 되는 듯 하더니 10여초 후 '서비스 없음'으로 바뀌더군요. 접점 불량인가 싶어 지우개 신공까지 동원했지만 요지부동. 게다가 해당 USIM을 iPhone 12를 제외한 다른 기기에 넣어 보면 바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머리를 쥐어뜯다 이런저런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자급제로 산 기기는 통신사 DB에 정보가 누락되어 기변이 안 될 수 있다는 정보를 발견했습니다. 해당 기기는 이미 KT와 LGU+(알뜰폰)에서 등록 작업 없이 사용한 바 있어 해당될 가능성은 낮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SKT 고객센터에 기기를 등록할 수 있냐고 문의해 보았으나 IMEI 등록은 유선상으로는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돈 안 되는 일은 똥 씹은 얼굴로 처리해주는 대리점에 가서 문제점을 어떻게 설명하나, 명의자 본인이 있어야 하니 아버지께 반차라도 쓰시라고 해야 하나'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했습니다. 다음 날, 조금 맑아진 머리로 고민해보니 어쩌면 13으로는 USIM만 옮긴 상태여서 제 LGU+(알뜰폰) 회선에는 iPhone 12가 주된 기기로 물려있는게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신사 인증 과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처음 몇 초는 정상적으로 통신사를 잡았다 연결이 끊기는 걸로 미루오 해당 기기를 통신사 DB와 대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알뜰폰 고객센터와 반나절 씨름한 끝에-상담사 연결이 힘들었을 뿐 기기 변경 자체는 10여분만에 처리-13으로 기기 이동을 했습니다. 이후 SKT USIM을 12에 끼워보니 좌상단은 'SKT'가 10초 뒤에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더군요. 오비이락인지 실제로 통신사 인증 DB의 엉킴을 풀어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프라인 매장 방문 없이 해결했다는 데에 만족하고 데이터 이전 작업을 진행해 기기를 이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