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건수는 소재 모아두는 문서에서 몇 달 째 위치만 바꾸고 있던 주제에서 출발했습니다.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신청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어서 '다음 기회에' '예산 여유가 되면...'을 되뇌며 밀어두고 있었지요. 그러다 어차피 ‘커미션 자제’도 작심삼일로 끝난 상황에서, 목에 끼인 가래처럼 남아 있던 이 주제를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가는 예전부터 리퀘스트를 신청해볼까 눈독은 들이고 있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요. 지난 6월에는 P90을 주제로 픽시브 리퀘스트 접수까지도 시도해 보았지만 응답이 없어 포기한 적도 있고요. 막상 픽시브 리퀘스트 결과물을 내놓는 걸 보면 리퀘스트를 열어놨지만 실제로는 커미션을 받지 않는 케이스도 아닌데(이상한 소리 같지만 이런 경우가 제법 있더군요) 왜 그럴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신청하면서 세부 사항을 확인해보니 작가분 희망 가격이 픽시브 리퀘스트에서는 8천엔이지만 skeb에서는 1만2천엔이더군요. 두 플랫폼에서 모두 신청을 받으면서 권장가격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아직도 무슨 의도가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1) 픽시브 대신 skeb으로 신청서를 넣고 2) 금액을 1만5백엔으로 설정했습니다. 작가 우선 정책을 제일로 하는 skeb의 경우 금액조차도 지정한 구간으로만 변경할 수 있더군요. 1만2천엔은 요즘 환율로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 단계 낮췄음에도 엔화로 지불한 커미션 중에서는 가장 큰 금액이네요.
만약 상대가 금액이 불만이어서 반려하면 돈 굳어서 좋고, 라는 생각으로 8월 7일 신청서를 보냈는데 90분만에 신청을 수락했다는 메일이 도착했습니다(이로서 하루 이상 가부를 표하지 않는 건 무언의 거부라는 저의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사례가 하나 더 늘었네요). 희망 마감일 90일에 평균 마감일은 74일이기 때문에 절기에 전혀 맞지 않게 더운 입추에 시작해, 그림을 받을 즈음에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10월 23일)이 코앞이겠구나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세 달 전의 제 예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는데, 실제로는 작업 기간 90일 중 89일이 지난 11월 3일 늦은 밤 완성품이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24절기 잣대로 따져 보면 입동(11월 7일)이 코 앞이네요.
“유루캠“ 극장판 카운트다운을 추가하려다 다시 한 번 새기는 교훈: 마감 90일짜리 커미션은 넣지 말자. pic.twitter.com/jQxX5hCEzy
— Paranal (@nagato708) October 14, 2022
사실 마감 기간이 슬슬 가까워지면서 마지막 날 23시 30분에 도착, 심지어는 90일이 경과해 리퀘스트가 '터지는' 게 아닐까하는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나마 그렇게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의뢰한 의상은 실제 해당 총기를 사용하는 영국 무장경찰관(CTSFO) 복장으로, 소녀전선 게임에 정식 채용된 것은 아니고 캐릭터 디자이너가 본인 트위터에 따로 올린 적이 있어 나름 유명한 바리에이션입니다.
— 二花sosu (@goflowerqwq) April 3, 2021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커미션을 넣은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MCX 새 스킨이 공개되었다는 건 아이러니죠. 만약 고민을 며칠 더 했다면 새 스킨을 주제로 한 그림이 나왔겠지요. 다만 이 의상도 나름 ‘땍띠껄’함이 있어 좋아하기 때문에 새 스킨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 후회하지는 않습니다(기다리는 동안 해당 스킨으로 커미션을 두어 장 넣었기도 하고요).
スケブで描かせていただきました!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pic.twitter.com/hAfqSZUpnj
— はなBuさ (@HanabusaRaleigh) November 3, 2022
글을 마무리하며 작가분이 아직도 의뢰를 받으시나 확인해보니 pixiv 리퀘스트는 1만엔, skeb은 1만4천엔으로 권장 금액이 올랐더군요. 지난 3개월동안 물가 상승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두 플랫폼 간 가격 차이가 왜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pixiv 쪽이 수수료도 더 높을텐데 말이죠).
* 2022-11-09 추가
원본 캐릭터 일러스트레이터가 해당 커미션 그림을 리트윗했더군요. (내가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스크린샷으로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p.s. skeb 신청하기 전 예전 그림을 넘겨보다 본 기억이 있는 SIG MCX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인 픽시브에서는 삭제되어 있지만요(단보루 링크에 따르면 2021년 7월 업로드된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