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4일, 습관처럼 픽시브 추천 그림을 훑어보다 마치 애니메이션 한 컷처럼 작업한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해당 그림은 리퀘스트 작업이었는데, 작가분 리퀘스트가 열려 있음을 인지한 순간 '이건 신청해야겠다'라는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2022년에는 결제 전 두 번 생각하고 카드 번호를 입력하자고 다짐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건만, 식후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빠르게 써내려간 리퀘스트를 보냈습니다. 반나절동안 연락이 없어 이대로 거절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는데 리퀘스트를 수락했다는 알림이 메일로 도착해 있더군요.
리퀘스트 작업 결과물에 반해 신청했기 때문에 (예전에 당한 적이 있는) 개인작과의 퀄리티 차이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이전과 달리 작가에 대한 사전 조사가 없었기 때문에 리퀘스트 작업에 평균 어느 정도 소요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다른 의뢰인이 요청서를 작성할 때 사용한 외부 링크 업로드일과 같은 간접적 정보로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겠다고 어림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던 시점에서는 낙장불입이니, 60일 만기를 꽉 채우는 한이 있어도 결과물이 좋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철저하게 작가 중심주의인 skeb만큼은 아니지만 픽시브 리퀘스트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데, 예를 들어 제작중 상태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지불 금액이나 소요 기간 등의 정보가 완성한 뒤에는 숨김 처리됩니다. 그렇기에 관심 있는 작가가 픽시브 리퀘스트를 받는다면 미리 그런 간접적 정보를 확인해 실제로 허용되는 금액 범위나 작업 기간 등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완성품은 신청 27일만인 2월 19일 도착했습니다. 이번 의뢰는 그럴 운명인지, 완성 알림이 잠자리에 든 뒤 도착해 실제 확인은 20일 아침에 했지만요.
이번 캐릭터는 커미션으로는 네 번째인 소녀전선의 P90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상대를 내려다보며 smug face😏-일본어로는 도야가오(どや顔)혹은 게스가오(ゲス顔)라고 하는-를 짓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랜만에 저의 취향 중 하나를 걷어낸 '평범한' 체형이며, 1년여만에 캐릭터의 원본 모델이 된 총이 등장했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겠지요.
"그려진 총" 하니, 최근 2D 일러스트 시장에서 총과 미소녀를 조화롭게 그리는 분은 생각보다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픽시브나 트위터에 가 보면 실총의 커스텀 부품이나 생산 연도, 로트별 변화까지 감안해 카탈로그 렌더링보다 꼼꼼하게 그리시는 작가들이 계시지요. 하지만 그 정도로 총에 집중하게 되면 인물은 모에 그림으로 분류되기 위한 일종의 마네킹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더군요. 반대 방향에서 접근하면, 일본식 미소녀 그림을 그리면서 총을 포함한 기계류를 부담스러워하는 작가는 훨씬 많고요(멀리 갈 필요 없이 소녀전선 팬아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상극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두 요소의 적절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그림 실력에 돋라하면 대부분 프로 영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아마추어 시장에서 위와 같은 간극을 크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서, 리퀘스트 플랜 제목이 '애니메이션 느낌의 그림'이어서 해당 플랜으로 그림을 신청하면 완성본과 함께 위에 첨부한 원화 느낌의 스케치가 포함됩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해당 바리에이션을 봤을 때에는 너무 컨셉에 몰입한 게 아닌가 아닌가 싶었지만 실제로 두 장을 함께 놓고 보니 완성본과는 다른 매력이 있네요.
흉상까지 작업하는 데에 8천엔(약 8만3천원)이면 저렴한 가격은 아닙니다만, 실력과 더불어 개성도 있는 그림체이기 때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스케치로 받은 AR-57과 좋아하는 작가분이 그린 P90을 든 오리지널 캐릭터 그림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2022 2/3 放送中100円後援 rkgk (3)
— AQUA_ニャー (@AQUAnyang) February 5, 2022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少女前线 #ドールズフロントライン #AR57 pic.twitter.com/arHwrTViYE
年に一度はP90描いておきたい。 pic.twitter.com/I3dND9Htir
— itou (@onnsoku_itou) February 10, 2022
p.s. 이 그림을 충동적으로 신청했다는 '고해성사'를 읽고 결말을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2월에도 여러 장의 그림 리퀘스트를 신청해 완성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