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도 커미션을 의뢰한 바 있는데, 보통은 쿨타임이 돌아 한동안은 아이디어가 없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관련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더군요. 처음에는 바람 빼기 용도로 메모장에 키워드를 작성하는 수준이었지만, 7월 말에는 여러 키워드를 합쳐 아이디어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전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를 완성하고 점찍어두었던 작가분께 연락하니 지금은 곤란하다고 거절당하는 바람에 스텝이 꼬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아이디어는 그려질 운명이 아닌가보다' 하며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심기일전해 아이디어를 여러 번 수정하고 그와 함께 새로 의뢰할만한 작가분도 조사해 8월 11일 대기 번호표를 뽑았습니다. 작업 자체는 20일에 시작해 24일에 완성품을 받아 예상보다 빠르게 완료되었습니다.
이번 일러스트 컨셉은 둘도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카드탑 쌓는 모습입니다. 위에서 말한 작가 잃은 초안에서는 본인 탄창을 젠가처럼 쌓는 구도였는데, 총은 아닐지라도 일상용품을 넘어선 소품이 들어가는 순간 선택지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사소한 일을 명운이 걸린 것처럼 진지하게 임한다는 컨셉만 남기고 소품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트럼프 카드 쌓기로 바꾸었습니다.
이번 그림이 흉상인 이유는 상기했듯 충동적으로 시작한 커미션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보려는 수였습니다. 카드탑 쌓기가 선정된 이유 중 하나도 앉아 있으면 상체만 나와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었고요. 하지만 이는 소품 추가 비용을 간과한 결정이었고, 이번에 의뢰한 분 기준으로 가격이 반신 기본 수준까지 올라 생각만큼 금전적 절약은 없었습니다.
초안 메모에는 확실한 배경(커피숍)이 있었지만 여러 번 수정하면서 해당 부분이 누락되어 최종 의뢰서에는 "실내"라는 두루뭉술한 키워드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작가께서 은은한 나무 향이 날 법한 고풍스러운 개인 방으로 그리셨는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제법 만족스럽습니다. 참고로 다람쥐는 작가분께서 넣은 '이스터 에그'입니다. 실제로 캐릭터 머리 모양을 빗대어 별명 중 하나가 다람쥐이기는 한데, 의도하고 넣으신 건지는 따로 여쭤보지 않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일러스트가 정사각형이어서 인스타그램 사진 느낌도 나는데-이제는 IG도 꼭 정사각형 사진만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닙니다만-다만 그런 컨셉으로 간다면 이 '사진'은 누가 어떻게 찍었을까하는 쓸데없는 의문이 들기는 하네요.
최근 의뢰는 따로 참고자료를 드리기가 곤란한 플랫폼이어서 설명으로 갈음했는데, 오랜만에 iPad Pro로 그린 '스케치'가 있습니다. 완성품과 그나마 비슷한 건 나무 책상을 나타내기 위한 갈색 뿐이군요.
커미션 글을 마무하면서 작업해주신 작가분을 소개하는 게 예의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막상 소개하더라도 업계 특성 상 글을 읽을 즈음에는 상황이 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아 조금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일단 이번에 의뢰하신 분은 글 작성 시점에서는 상시로 받으시는 걸로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