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중국 브랜드 입력 장치가 PC 덕후들에게 요 몇 년 유행인데, 그런 빅웨이브를 타고 티메프가 뒤에서 자금 돌려막기하는 걸 가리기 위한 초저가 공세를 하던 시절인 지난 1월 VXE R1 SE 무선 마우스를 구입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가성비 소리를 들었던 로지텍 G304 대비 가벼워-물론 무게를 위해 강성이 좀 희생되긴 했습니다-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었는데, 몇 달 전부터 휠이 툭툭 튀기 시작하더군요. 검색해보니 휠 인코더 불량 때문으로, 이 회사의 고질병이라고. 참다 못해 이전에 쓰던 G304를 다시 꺼내 써 보기도 했지만 당시 구매 글에도 썼듯이 애초에 마우스 버튼이 오락가락해서 교체한 것이라 결국 G304는 소형전자기기 분리수거함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휠 돌릴 때 랜덤하게 스크롤이 튀면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어차피 게임도 안 하는데 이번에는 다시 로지텍 업무용 라인으로 돌아갈까 싶더군요. 다만 생산성 업계에서 1순위로 거론되는 로지텍 MX Master 3s는 너무 크고 무거워보여서 상대적으로 소형인 MX Anywhere 3s를 탐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쪽은 수요가 적어서인지 특가 소식도 거의 없더군요.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싸게 파는 데가 있나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검색해봤는데 지난 주(13일) SSG에서 20% 할인 적용으로 7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걸 발견해 덥석 구입했습니다. 이건 온라인 SSG닷컴 물류창고가 아닌 근처 이마트 재고를 배송해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결제한 지 3시간만에 문 앞에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다만 사용하는 봉투가 한 종류로 통일되어 있는지 사람 상체만한 종이 봉투 안에 작은 마우스 상자만 들어 있어 피식했네요.
내용물은 마우스, (사진에는 없지만) 간단 북클릿, USB-A to C 케이블. 요즘 추세에 맞게 내부 포장에 비닐이 하나도 없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고급 라인이어서 블루투스와 Logi Bolt 동글을 모두 지원하는데, 정작 동글은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검색해보니 MX Master 3s에는 동글이 포함되어 있군요). 다만 제 경우에는 이미 PC에서 사용하던 MX KEYS S 덕에 해당 동글을 보유하고 있어 그 쪽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색깔은 세 종류인데 이번에도 흰색-공식 명칭은 페일그레이-으로 구입하였습니다. 물론 오래 쓰면 손때가 묻는 걸 감수해야 하지만, 비슷한 색감인 MX Keys S를 1년 반 사용한 경험으로 미루어 설사 레터링은 벗겨지더라도 변색은 생각날 때마다 닦아준다는 전제 하에 심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게다가 로지텍의 유명한 버튼 내구도를 생가하면 변색 이전에 기기 교체를 할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니까요.
* 왼쪽부터 VXE R1 SE, MX Anywhere 3s, 로지텍 페블 M350.
재밌는 건 손바닥이 닿는 표면적만 보면 M350 쪽이 '일반적' 마우스에 가깝지만 높이나 쉘 모양 때문에 그립은 Anywhere 쪽이 훨씬 낫더군요. 마침 가까이 있던 드립 커피 계량용 저울로 재미삼아 무게를 재어 보니 R1 SE는 55.1g, MX Anywhere 3s는 94.1g, M350은 79.5g (AA 건전지 포함).
이 글 초안을 작성하다 생각났는데, 손바닥보다 작은 마우스를 메인으로 쓰는 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노트북 터치패드가 지금처럼 상향평준화되지 않았던 2000년대 후반, 노트북과 함께 MS 블루투스 노트북 마우스 5000을 사용했는데, 작은 크기에도 꽤 마음에 들어 옆에 붙어있는 엠보싱 고무 재질이 말 그대로 녹아내릴 때까지 썼었죠. 아쉽게도 실제 제품은 애저녁에 전자쓰레기 섬에 들어갔을테니 실물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기억만으로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싶어 사양을 찾아보니 MS 마우스 5000 쪽이 높이는 약간 높으나 가로세로는 약 1cm 더 작더군요.
상술했듯이 Bolt 동글은 없지만 Logi Options+에서 동글에 새 기기를 추가 연결할 수 있는데, 추가 과정에서 '청기백기'처럼 마우스 버튼을 10여 번 눌러야 초기 연결 가능. 한두번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보안 문제 때문이려나 짐작해볼 따름입니다.
마우스 하나를 세 대의 기기와 연결할 수 있고, 블루투스를 지원하기 때문에 iPad에도 사용 가능합니다. 다만 버튼 커스텀은 G304처럼 기기에 저장되는 게 아닌 Option+가 관여하는지라 사이드 버튼은 기본 설정(페이지 앞/뒤)으로 작동하더군요.
작은 크기 다음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로지텍 홍보자료에서 'MAGSPEED 전자 마그네틱 스크롤 휠'이라 부르는, 통칭 '무한 휠'입니다. 무환 휠 모드를 전환하면서 기기에 귀를 바싹 대 보면 전자석에서 나는 걸로 추정되는 '딸깍' 소리가 나더군요. 이름처럼 자석 방향으로 저항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는 시스템인데, 해당 휠 때문에 로지텍 제품의 단점(비싼 가격, 버튼 내구도 등)을 감수하고서라도 계속해서 구입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요.
휠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지는 게, Logi Options+의 휠 설정에서 단계별/무한휠 토글, 단계별 휠 상태일 때의 저항감 설정, 평상시에는 단계별이지만 휠 굴리기에 속도가 붙으면 알아서 무한휠로 바뀌는 '스마트시프트' 옵션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Master 시리즈에는 있는 가로 휠 대신 사이드 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세로휠을 가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의 기능도 있더군요. 이건 가로 타임라인을 많이 만져야 하는 편집자들이 껌뻑 죽는 옵션이라는데, 제 사용 루틴에서는 도저히 써 볼 일이 없어 평가 보류.
휠 자체는 일단 만듦새가 좋고 특히 무한 휠 상태에서는 돌리면 피젯 토이처럼 경쾌하게 굴러가 느낌이라 컴퓨터 앞에서 괜히 휙 돌려보게 될 정도입니다. 상술한 대로 자석으로 저항을 조절하기 때문에 단계가 있는 모드에서도 저항 강도를 설정할 수 있는데, 이것도 슬라이더를 바꿀 때마다 굴리는 느낌이 달라지는 게 신기하더군요. 저는 (스크린샷을 보면 아시겠지만) 40% 대로 저항이 적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닌 정도로 사오요하고 있습니다.
버튼의 경우 무소음 제품이라는데, 기존에 쓰던 제품이 엄첨나게 딸깍거리는 스위치여서 역체감이 크게 느껴집니다. 다만 소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 통상적인 작업 환경에서는 관계 없겠지만 예를 들어 '마우스 금지 열람실'에서 쓸 정도는 아닙니다. 사이드버튼은 왼쪽에 두 개가 있는데, 첫 날에는 묘하게 저항이 크다고 느껴져 불호에 가까웠는데, 이건 며칠 사용하니 이미 손가락이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크게 불편하지 않더군요.
배터리는 홈페이지 스펙 기준 70일 사용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사용량이나 센서 DPI 설정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 기준점으로만 생각해야겠지요. 일단 구입 첫 날 100%까지 충전 후 평상시처럼 사용했을 때 5일 후(17일 심야) 80%를 기록했습니다.
여담으로 이 사진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지금 책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USB-C 케이블이 애플 제품이어서 충전 중 사용할 수 있는 마우스 구도에 피식했습니다(마침 루머로 내년에 애플에서 새 디자인의 마우스가 나올 수 있다고는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