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iPhone이 예년보다 늦게 발표되었죠. 지난 번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 이미 루머 단계에서부터 iPhone 12를 구매 후보로 올렸고, 발표를 본 뒤 실제 스펙을 재 봐도 제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자급제 기기를 구입했습니다. 그 동안은 빨리 받는다는 장점 하나만 보고 통신사 예약을 해 왔습니다만, 5G 지원 기기는 자급제로 구입해야만 LTE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군요. 5G 세계 최초 상용화라며 구호는 멋지게 내걸었지만 통신사도 아닌 감독기관인 과기정통부조차 mmWave가 일반 소비자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버젓이 하는 걸 보고 아직까지 넘어갈 때가 아니라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10월 23일로 한국 예약 일자가 나온 뒤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수집해보니 쿠팡 등 오픈마켓에서 1차 예약으로 풀리는 물량이 할인 조건도 좋고 배송도 발매일에 도착하게 맞춰 준다더군요. 그렇게 할인 카드까지 따져가며 23일 0시를 기다렸지만, 막상 주문이 몰리자 사람이 몰려 순식간에 매진 행렬을 이어갔습니다. ‘용달 블루’라며 한국에서는 그렇게 인기 없다는 블루도 결제 단계에서 사라졌습니다. 결국 언제는 할인해서 샀나, 하며 온라인 스토어에서 12 화이트 64GB를 주문했더니 그래도 30일 배송 예정은 뜨더군요. (나중에 커뮤니티에서 확인해 보니 온라인 스토어 배송도 금방 도착예정일이 밀렸다고 하니 운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나봅니다.)
메일은 안 왔지만 웹에는 DHL 송장번호를 붙여놨네요. 인천 출발인 걸 보니 초도물량은 사전에 수입해 둔 모양. pic.twitter.com/mV5upqrxgk
— 나가토 유키 (@nagato708) October 29, 2020
애플 쪽 배송은 초도 물량을 국내에 확보해 두었는지 DHL 송장을 보니 중국에서 날아오지 않고 인천에서 출발하더군요. 다만 우체국으로 이관되어 최종 배송은 이 쪽에서 합니다. 온라인 스토어에서 그렇게 자주 구매하는 건 아니라 예전에는 물량이 많을 때에만 우체국으로 넘기는 시스템이라 생각했는데, 아예 애플 배송분은 국내에 들어오면 특정 업체-송장 보낸 이에 따르면 다다글로벌-에 이관해 우체국으로 보내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 포장을 뜯고 본체가 담긴 상자를 보면 예전보다 높이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말이 많은 충전기 및 이어폰 제거 때문이지요.
포장지를 뜯고 상자를 열면 iPhone 뒷면이 저를 반겨줍니다. 예전에는 본체 앞면이 위로 가게 되어 있었으나 2019년 iPhone 11부터 뒷면이 보이도록 바꾸었죠. 참고로 디스플레이 포장지가 예년과 달리 불투명인데, iPhone 12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이 또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합니다.
유리 밑에서 올라오는 흰 색은 처음이어서 발색에 감탄하고 나서 집어든 첫 인상은 '가벼움'이었습니다. XS가 177g, 12가 162g이니 15g 차이인데 항상 들고 사용하는 기기라 저울처럼 민감하게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기 루머에서 각진 디자인이라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iPhone 4나 5로 '돌아간다'고 묘사하였지요. 그런데 실제로 손에 쥐어보니 이전 디자인의 계승이라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4의 경우에는 옆면 테두리와 앞뒷면 사이에 단차가 있었고, 5 시리즈는 뒷면이 유리가 아닌 알루미늄 위주였으니까요. 6부터 XS까지 내려온 옆면이 둥근 디자인과 4/5, 이번 12 라인으로 돌아온 각진 디자인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면 크기는 XS 5.8인치에서 6.1인치로 커졌습니다. 2년 전 XS/XR 사이에서 고민할 때 3D Touch(R.I.P)와 더불어 작은 크기 때문에 XS를 골랐다는 게 새삼 떠오르네요. 올해는 아예 SE보다 크기가 작은 12 mini를 내면서 12와 12 Pro는 같은 크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2는 베젤 감축과 디자인 변경으로 크기를 줄여 스펙 시트를 읽지 않았다면 첫눈에는 화면이 커졌다는 것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11을 리셀러 전시장에서 만져본 기억으로는 그렇게 크고 무거웠는데 말이죠.
물론 사용해 보면 보면 오른손 엄지로 왼쪽 하단에 있는 키보드 언어 전환을 누르기 힘들다거나, 타자 입력 때 두 손이 좀 더 편하다는 등 화면 크기가 커짐에 따른 사용상의 변화점이 있습니다. 당연히 한 화면에 뜨는 정보량도 늘어났지만, 이는 일부러 옆에 두고 비교하지 않으면 의식할 수준은 아닙니다.
iPhone 12는 상자 뒷면에 충전기와 이어폰이 없음을 친절하게 명기해 두었네요. 이전 상자와 비교해보면 상단에 용량 표시가 없어져서 (하단 바코드에는 남아있음) 매장에서 분류하는 사람들이 좀 귀찮겠네요. pic.twitter.com/ZatHFpd1Aw
— 나가토 유키 (@nagato708) October 30, 2020
어댑터 제거와 더불어 Lightning 유지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세계에서 거품 왕국에서 사는 기술 호사가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미 애플 생태계에 들어와 있다면 USB-C보다는 Lightning이 더 잘 보급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번에 공격적으로 홍보한 MagSafe를 보면 오히려 1~2년 내로 유선 포트 자체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iOS 기기 간 무선 마이그레이션 기능을 제공하지만 습관이 무서워 iTunes 백업-복원을 거쳐 기기 세팅을 완료했습니다. iOS 14.1 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버전 차이로 업데이트를 기다릴 필요는 없었네요. 시리얼넘버에 따르면 2020년 42주차(10월 12~18일) 생산품으로 공장에서 따끈따끈하게 나온 제품입니다.
iOS 기기가 그렇지만 복원해서 몇 가지 설정해주고 나서 일상생활에서 쓰다 보면 언제 폰을 바꿨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상술했듯 조금 커진 크기 때문에 달라진 터치 타겟과 역사 속으로 사라진 3D Touch의 부재를 느낄 때마다 그래도 새 iPhone이구나,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커서를 옮기고 싶을 때마다 한 번 움찔하고서야 햅틱 터치 식으로 스페이스 바로 손가락이 옮겨갑니다.
* 같은 피사체를 순서대로 XS와 12 카메라로 촬영한 샘플.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카메라의 경우에는 여전히 렌즈가 두 개이지만 XS의 텔레포토 대신 울트라와이드 카메라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텔레포토는 처음에 신기하다고 몇 번 쓰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울트라와이드는 좀 더 자주 사용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군요. 여담으로 카메라 디자인은 X/XS의 알약 형태보다는 11부터 내려온 ‘인덕션’ 형태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iPad Pro(2020)와 iPhone 12 카메라 모듈 모양 비교. 렌즈 직경이 눈으로 봐도 차이가 날 정도라는 데 놀랐네요. pic.twitter.com/3iXjlaUS78
— 나가토 유키 (@nagato708) November 1, 2020
12에 새로 들어온 기능은 아니지만 저는 처음 사용해 본 야간 모드 사진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밝고 선명하게 찍힌 사진을 확대해서 보고 있노라니 귀신 씌인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아쉽게도 시국이 시국이다보니 집 주변이 아닌, 블로그에 실을만한 샘플 사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잘 찍은 사진은 다른 리뷰에서 많이 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이번 글은 단순한 개봉기보다 좀 더 알차게 작성하겠다고 사용할 때마다 떠오르는 감상을 메모했습니다 당초에는 사용 1주일은 채우고 글을 쓰려 했지만, 막상 하루이틀 정도 메모하고 나니 굵직한 감상은 완성되어서 수령 5일만에 작성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