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애플이 COVID-19 영향으로 루머로 돌던 이벤트 대신 보도자료로 iPad Pro 새 라인업을 발표했죠.
iPad Pro의 새 카메라나 별매 키보드에는 관심없지만, 지금 쓰는 10.5”가 2세대 전 제품이니 바꾸기는 해야겠죠. 항상 베이스모델 사는 입장에서 128GB가 바닥이여서 실구매가격이 오른다는 건 뼈아프지만, 예전 ‘기변병’때 고민했듯 다른 기종으로 가는 걸 정당화하기는 더 어려우니까요.
— 나가토 유키 (@nagato708) March 19, 2020
전작 대비 LIDAR 센서를 달고 카메라를 하나 추가했다지만 iPad 카메라는 문서 스캔 외에는 쓸 일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프로세서가 A13X였다면 사양 업데이트라고 넘겼겠지만 정작 4세대에 들어간 A12Z SoC는 A12X 대비 GPU 코어 하나 증가한 '옆그레이드' 제품이죠.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작년 말 3세대 중간 사이클에서 구매욕이 커졌을 때 행동했어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난 일이니까요.
iPad Pro 3세대를 지금이라도 영입해야할지 고민입니다. 행사 후에 올해 A13X 리프레시가 나올지도 조금 의심스럽고, 괜히 태블릿에도 카메라 3개를 욱여넣을까 걱정도 되고요.
— 나가토 유키 (@nagato708) September 12, 2019
무작정 다음 제품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서, 타협점으로 정가보다 약간 싸게 판매하는 코스트코 입고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3세대 재고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내 발매 한 달이 되도록 입고될 생각을 않더군요. 결국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리셀러에서 카드할인 행사 끼고 구입했습니다. 무이자할부는 미래의 나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매력적인 제도니까요.
그렇게 주문 이틀만에 뽁뽁이로 가득 찬 큰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상자 디자인은 대동소이한데 먼저 검은 본체가 나를 맞아주고 그 밑에는 18W USB-C 전원 어댑터, USB-C 충전 케이블이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공식 문서에서 굳이 이를 '충전 케이블'이라 명시한 이유는 고속 데이터 전송은 지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8년, iPad Pro를 발표했을 때 아직 iOS에서 USB-C로 할만한게 별로 없어 'iPhone도 충전할 수 있어요!'했던 게 생각나서(첨부 2번) 재현. 잘 되네요. pic.twitter.com/4hRodch6N6
— 나가토 유키 (@nagato708) May 21, 2020
지금은 단종된 USB-C 29W 어댑터가 있어 18W 어댑터는 당분간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보존하겠군요. 30핀과 라이트닝을 동시에 쓰던 시절에 겪었던 것처럼 당분간은 다른 애플 제품을 충전하기 위한 라이트닝과 USB-C 케이블 두 개를 어댑터 하나에 바꿔 끼우며 써야합니다. USB-C와 A가 모두 포함된 다포트 어댑터도 존재합니다만, 당장은 구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10.5인치 iPad Pro(250.6x174.1x6.1mm)와 11인치(247.6x178.5x5.9mm) 크기를 보면 세로가 약간 짧고 가로가 약간 길지만, 겹쳐서 대 보지 않는 이상은 잘 모를 정도로 비슷합니다. 두께는 11인치가 더 얇지만 마감 차이로 양 손에 쥐고 있으면 11인치가 약간 더 두꺼운 느낌도 듭니다.
2018년 해당 디자인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2010년 첫 iPad 광고 나레이션의 '옳은 방향도, 틀린 방향도 없다'라는 말을 8년만에 현실로 가져온 형태라 생각합니다. 또한 호사가들은 각진 모서리 때문인지 iPhone 4를 연상시킨다고 했는데 이에 동감합니다. 다만 잡고 쓰기에는 기존 디자인처럼 옆이 둥글둥글한 게 좋지 않나라는 생각도 드네요. (iPhone 6처럼 마찰이 너무 작아 비누처럼 미끄러지지 않는 한도에서)
11인치 디스플레이는 iPad의 전통적인 4:3 비율이 아닌 1.43:1 비율입니다. 그래서 세로로 쓰면 처음에는 좌우가 눌린 느낌이 납니다. 혹자는 ISO 216에 기반한 A계열 종이 비율(약 1:1.414)과 가까워 PDF 문서 보기에는 낫다는 말이 있더군요. PDF 판 전자책으로 시험해보니 가로로 두 쪽으로 보면 좌우여백 때문에 콘텐츠 크기에는 큰 차이가 없고, 세로로 한 쪽씩 하면 좀 더 꽉 찹니다.
다시 언박싱으로 돌아와서, 이전까지 그러했듯 iTunes에 연결하려니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요구해서 그냥 iCloud 백업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실수였는데, 끝도 없이 대기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요즘 해외망이 엉망인 걸 간과했던 거죠. 결국 절차를 되돌려서 다시 두 기기를 케이블로 연결해 백업과 복원을 거쳤습니다.
다만 iPad Pro는 USB-C 케이블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USB-A만 있는 PC라면 곤란할수도 있겠네요. 다행히도 사용하는 데스크톱에 USB-C가 하나 있어서 급하게 젠더나 USB-A/USB-C 케이블을 찾아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지만요.
USB-C 하니, 작년 9월 경 iPad Pro 3세대를 들이려고 고민했던 시기 샀던 USB-C 허브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업데이트된 iOS 13.4에서 마우스 지원이 향상되어 쓰임새가 더 많아졌지요. 우선 HDMI 케이블을 모니터에 연결하고 데스크톱에 사용하는 키보드/마우스 통합 USB-A 동글도 연결했습니다. 블루투스 마우스가 없어서 예전부터 이렇게라도 테스트해보고 싶었으니까요. HDMI 케이블 연결해서 출력하면 첨부한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넉넉하게 여백이 남습니다.
작년에 구입한 USB-C 허브를 이용해 데스크톱으로 용도변경한 iPad Pro. 헤드폰 잭이 있었다면 스피커까지 연결했을텐데요. pic.twitter.com/1wSHEhIkDz
— 나가토 유키 (@nagato708) May 22, 2020
DSLR에 이용하는 SD 카드를 연결해서 USB 이동장치 연결도 테스트했습니다. 모니터에 띄운 사진도 D80 RAW 파일을 로컬로 가져와 바로 픽셀메이터 포토에 불러온 모습입니다.
캡처로만 보면 '저게 뭔가' 싶던 동그라미 커서도 금방 익숙해지더군요. 외장 키보드도 처음 연결해보는데 Caps Lock으로는 최근 언어 두 개만 왔다갔다하고, 3개 이상이면 Ctrl+Space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iOS는 11인치부터는 풀사이즈 키보드를 따라하기 때문에 세로모드에도 탭 키부터 양 쪽 Shift까지 꽉 차 있습니다. 당분간은 오타가 좀 나겠네요. pic.twitter.com/Fcjrz0dO7y
— 나가토 유키 (@nagato708) May 21, 2020
iPad 12.9인치가 처음 나왔을 때 가상 키보드에 탭과 Shift가 양 쪽에 있는 형태 등 실제 키보드와 유사한 형태로 출력되도록 했는데, Pro 11인치가 나오면서 여기에도 이를 적용했더군요. 아직 손가락 습관이 들지 않아서 의도하는 키의 왼쪽을 두드리고 있는데 이는 며칠 쓰면 적응하겠지요.
홈버튼이 없는 건 iPhone에서 이미 적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깨울 때 습관적으로 홈버튼이 있던 자리로 손이 가게 됩니다. 대신 두드려 화면 켜기가 있기 때문에 잠시 움찔하는 정도이고, 이 또한 적응의 문제이므로 이 글을 올릴 때 즈음에는 괜찮아지리라 생각합니다.
iPad Pro(2020)가 옆그레이드가 될 줄 알았다면 작년에 중간 사이클에라도 살 걸 그랬나봅니다. pic.twitter.com/FKBK4gnW4C
— 나가토 유키 (@nagato708) May 21, 2020
뒷면 카메라가 네모난 딱지만큼 커진 이유는 LIDAR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지원 문서를 보면 기본 측정 프로그램에서도 사람 키 측량 등 추가 기능을 지원합니다. 또한 이전과 달리 기준점 인식하기 위해 카메라를 쓸어주는 과정 없이 바로 작동합니다. 애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AR 파일을 열어봐도 기준점 인식이 신통찮으면 말도 안 되는 크기를 출력하는 것과 달리(예를 들어 Mac Pro가 5L 휴지통만하게 나온다거나) 한 번에 그럴듯한 크기로 내보내줍니다.
벼르고 별러서 산 제품이라서인지 첫 경험은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수령 직후 메모를 시작할 때에는 사진 몇 장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중언부언 글이 길어졌네요. 추가 악세서리와 사용경험 등에 대해 추가로 코멘트할 부분에 대해서는 며칠 내로 후속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