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에 AirPods 3세대를 유닛만 끼고 돌아다니다 케이스를 잃어버렸다 생각한 사건이 있었는데(다음 날 다른 옷 주머니에서 케이스를 발견), 이 사건 때문에 왠지 마음이 동해 4세대를 구입했습니다. 오픈형임에도 노이즈 캔슬링(ANC)이 추가되었다는 소식을 보고 발매 당시에는 국내 출시하면 바로 구입하고 싶었지만 당시 사용하던 아이패드가 고장나는 바람에 (이제는 구형이 된) Air (M2)를 구입하느라 예산이 없어 미뤄왔던 것이기도 하고요.
쿠팡에서도 고가 제품을 구입하면 비닐 대신 택배용 상자를 쓰고 안에 에어 포장까지 채워주는군요. 첫 경험이라 좀 놀랐습니다. pic.twitter.com/zwqoDDQPO6
— Paranal (@nagato708) April 7, 2025
쿠팡에서 고가품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구입 시점에서 가격이 제일 저렴해 일단 구입해 봤는데, 제 기준으로는 쿠팡에서 처음으로 비닐봉지가 아닌 '택배 상자'로 물건을 받아 봤습니다. 상자에 딱 맞는 공기포장까지 되어 있어 상자 밖에 적힌 쿠팡 문구가 아니라면 제삼자가 보냈나 의심했을 정도였네요.
회사 내부 사정이야 알 수는 없지만 고가품 구입하는 사람들이 상자가 구겨졌네 등등 명분으로 반품할 경우 이를 중고품으로 재판매하는 등의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담으로 지인에게 이 에피소드를 말했더니 애플 제품이 '특별 관리'되는 걸로 봐야 하고, 다른 제품은 가격에 관계 없이 비닐봉투로 날아오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는 모양.


상자에는 본체와 책자뿐으로, 상자 뒷면에도 써 있듯 USB-C 케이블조차 없습니다. 측면 바코드에 적힌 생산월은 2025년 2월로, 꾸준히 팔리는 모양이다 싶었습니다.

3세대와 비교하면 눈대중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로폭이 줄었는데요 (스펙상으로는 약 4mm 차이). 그래서 처음 사용할 때에는 유닛 빼는 게 조금 힘들었는데, 2세대-3세대에서 케이스 디자인이 바뀔 때에도 그랬듯 며칠 지나니 금방 손에 익었습니다.
상태 LED가 반투명 처리되지 않고 케이스 밑에서 은은하게 올라오는 형태로 바뀌었는데, 애플 디자인 성향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반투명으로 흔적을 남긴 형태였던 게 오히려 신기하네요.

드디어 USB-C 케이블로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큰 변화이지요. 3세대는 Lightning이어서 iOS 기기 충전이 모두 USB-C로 바뀐 이후로는 알리 발 접이식 3 in 1 유도식 충전기를 활용했는데, 이제는 서랍에서 치워도 될 듯 하네요.
AirPods 4도 유도식 충전을 제공하지만 MagSafe가 아닌 Qi 충전 호환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며(어차피 MagSafe와 Qi가 넓은 의미에서는 호환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님), 자석 배치는 Apple Watch 충전기를 따라갑니다. 워치는 사용하지 않아 3 in 1 유도식 충전기의 워치 칸(가격 생각하면 MFi 인증 모듈은 아니겠지만)에 올려보니 위치에 착 달라붙고 정상적으로 충전도 진행하네요. 워치 사용자라면 생각하기에 따라 오히려 좋은 변화일수도?
하단에는 스피커가 달려 있어 초기 설정으로는 유닛 탈착할 때에도 소리가 나는데, 스마트폰 키 가상 효과음도 바로 꺼 버리는 사람이어서 연결 후 바로 설정에서 비활성화. 그리고 이번에 한국에서 '나의 찾기'가 활성화되면서 알게 되었는데, 케이스 단독 추적은 최근 모델인 AirPods Pro 2세대와 4 ANC 기종만 가능하더군요.


개별 이어폰 유닛은 타공 위치나 충전 연결부가 달라졌지만 겉보기 크기는 비슷합니다. 착용감은 3세대 쪽에 가깝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1~2세대 대비 3세대 모양이 귀에 안 맞다고 했던 분이라면 4세대도 별로라고 생각할 듯 하겠네요 (저는 양 쪽 다 괜찮은 쪽입니다).
페어링 후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 인상은 3세대 대비 중저음이 상당히 강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후술할 노이즈캔슬링 때문인가 싶어 비활성화한 상태로 들어봐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같은 곡을 연속해서 4세대와 3세대로 들어보면 역체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 다만 팟캐스트 청취에서는 오프닝/엔딩 차임 외에는 그렇게까지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사실 이 쪽은 예전 KTX 특실 이어폰 수준으로 폐급이 아닌 이상 나쁜 게 이상한 영역이긴 합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 때문에 구입했다고 했지만, 그래도 오픈형이니 구색만 갖춰도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로 기대치가 낮았는데 상당히 성능이 좋아 놀랐습니다. 제품 수령을 밤 늦게 해서 첫 날에는 유튜브 백색소음 영상으로 테스트를 갈음했는데, 소리가 생각보다 잘 걸러져 실수로 재생 안 누른 줄 알았을 정도였네요.

모드는 '없음/주변음/적응형/액티브 노이즈캔슬링'으로 총 4종. 순서대로 소감을 써 보면, '주변음'은 적어도 오픈형인 4세대에 옵션으로 있어야 했을까 의문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없음-주변음 옵션을 바꿔 가며 들어보면 사람 목소리 등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인이어 형태인 Pro에서 유용한 기능이고 4세대 ANC에서는 모드를 가리고 맞춰보라고 하면 못 맞힐 듯 합니다.
적응형은 공식 지원 문서의 설명에 따르면 ANC와 주변음 모드를 섞어준다는데, 그 말처럼 노이즈캔슬림 특유의 먹먹함 없이 시끄러운 소리는 줄여주는 느낌입니다. 설정에서 세 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데 바꿔보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노캔 수준이 달라지는 것도 좋더군요. 처음에는 '적응형'이라고 해서 사람 목소리나 자동차 경적같이 들어야 할 특정 소리만 살리는건가 싶었는데 알고리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실제 사용해보니 그건 아닌 듯 하더군요.
노이즈캔슬링은 의외로 해당 효과를 묘사할 때 흔히 사용하는 ‘공기가 쑥 빠지는’ 느낌이 살아있어. 예전 오픈형 QCY에 들어 있던 ANC는 그냥 '외부 소리가 줄었다'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이게 20만원 차이인가 싶었습니다. 조용한 데서 소리 없이 ANC만 켜면 살짝 화이트노이즈가 느껴질 정도.
구조 상 오픈형이라서인지 ANC/적응형 활성화 상태에서도 걸어 다닐 때나 뭔가 마실 때 내 몸 안의 소리가 울리는 느낌은 없어. 인이어 이어폰은 불편해서 안 써도 3M 귀마개는 소음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데, 계속 써도 적응 안 되는 부분.
iOS에 화이트노이즈 기능이나 18.4에서 배경음악 재생 기능이 왜 있나 했는데, ANC와 함께 하면 내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들을 기분은 아니지만 주변 소음은 막고 싶을 때 쓰기 좋은 기능이겠구나 싶네요.
그리고 특성 상 하품 등 큰 얼굴 움직임으로 유닛 위치가 바뀌면 ANC가 풀리는데 금방 재조율하는지라 일부러 유닛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사용에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나마 실사용에서 느껴지는 사례는 의외로 뛰거나 머리를 크게 움직일 떄가 아닌,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귀에 이미 압박이 있을 때이더군요(그냥 제 머리크기 이슈일지도 모릅니다만).

전화 수락/거절(및 알림 읽어주기 중단)을 얼굴 제스처로 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제스처를 크게 해야 합니다. 고개를 움직이면 소리가 나면서 피드백을 주는 건 좋지만, 좌우/위아래로 두 번은 움직여어 인식하는 느낌이어서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이전처럼 멘트로 하는 게 나을지도?

대화 인지 기능 또한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실용성은 미묘했는데요. 명칭만 보면 내가 말을 시작했을 때 상대방 대화 길이까지 스마트하게 인식해 토글할 것 같지만, 그냥 착용자가 말을 하면 길이에 비례해 ANC/적응 모드를 비활성화하는 듯 합니다 (공식 문서에도 내가 대화를 시작하면 그에 따라 대응한다는 뉘앙스).
예를 들어 대면 계산대에서 점원이 물건 태깅하느라 시간이 지나면 “영수증이나 적립 필요하세요?” 물어볼 즈음에는 다시 ANC가 켜져 있더군요. 차라리 예전처럼 한 쪽 이어폰을 빼는 게 상대방에게 명확한 제스처가 보이는 장점도 있고 해서 나은 듯 합니다.
배터리의 경우 3세대 대비 지속 시간이 줄어들었는데-유닛 기준 6시간 청취에서 5시간/4시간[ANC 없음/있음]으로-애초에 이전 모델을 너무 오래 써서 기존 제품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고, 현실적으로 한 자리에서 유닛 배터리를 다 쓸만큼 이어폰으로 연속해서 듣는 건 귀 건강에도 좋지 않으까요. 그래도 데이터 포인트는 있어야 하니 남겨놓자면, 케이스를 100% 충전하고 하루에 1~2시간씩 사흘 사용했을 때 배터리 잔량은 60% 수준입니다.
1주일 사용한 뒤의 총평은 '만족'입니다. 물론 ANC 기능만 생각하면 인이어인 Pro가 더 좋겠지만, 저처럼 이물감 때문에 인이어 이어폰은 오래 못 쓰겠다, 혹은 외이도염 경력이 있어꺼려진다 하시면 충분히 대안으로 선택할 수준은 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