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ad 교체는 올 초부터 고민하던 안건이었지만 연식이 더 오래 되어 이제는 웹서핑도 힘들어하는 PC를 완본체로 교체하는 바람에 이는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올해 OS 업그레이드는 받았고, 올해 신제품의 셀링 포인트 중 하나인 Apple Intelligence는 한국어 지원이 2025년 예정이니 내년 상반기에 출시될 차세대 Air를 기다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하지만 사용 중이던 Pro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지난 달부터 USB-C 충전 케이블을 가리더군요. 늘 쓰는 케이블로는 항상 충전되어 몰랐는데 오랜만에 PC에 연결할 일이 있어 다른 케이블을 사용하려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갖고 있던 다른 케이블이나 충전기까지 꺼내 조합을 바꿔보니 어떤 케이블은 자기가 USB-A이 줄 아는지 한 쪽 방향으로만 충전이 되고, 어떤 케이블은 아예 꽃혀 있다고 인식조차 하지 않아(아이러니하게도 애플 USB-C 케이블은 인식 안 되는 쪽). 아마도 기기 자체 핀 접점에 문제가있지 않을까 싶은데, 제가 하드웨어 전문가는 아니니 확인할 방법은 없네요.
더 골치아픈 건 컴퓨터와의 연결은 아예 안 된다는 점입니다. 케이블, 연결 포트, 심지어는 PC까지 바꿔가며 테스트해봤지만 작동하는 조합을 찾지 못했습니다(그나마 USB 메모리 연결은 가능하더군요).
이 시점까지도 ‘어차피 PC 직접 연결할 일도 없으니' 하면서 내년까지는 참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대기 상태에서도 배터리가 1시간에 2%p씩 떨어지는 배터리 드레인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둔 날도 1일 배터리 소모는 50% 가까이 찍혀 있을 정도니까요. 이건 이상하다 싶어 처음에는 재부팅, 그 다음에는 재설정 후 (상술한대로 컴퓨터 연결이 불가하니) iCloud 복원을 해 봤지만 해당 현상은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재설정 후 복원하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세팅한 뒤 며칠 써 봤지만 여전히 같은 증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정나미가 떨어져 지난 10일, 결국 올 상반기 출시한 iPad Air (M2) 128GB를 구입했습니다. 당연히 내가 사고 싶을 때 마침맞게 할인 딜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카드 할인 및 적립, 경유 적립, 할부까지 최대한 챙겨 정가 대비 몇 만원은 아꼈습니다.
주문 후 하루만에 도착했는데, 상자에 적힌 문구나 본품 대비 지나치게 큰 박스로 미루어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라 풀필먼트 센터에서 보내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택배 박스에 완충재는 재활용 분류하기 힘들 만큼 많이 넣었음에도 정작 Air 박스 모서리 한 쪽이 찌그러져 있더군요. 저처럼 이런 데 무던해 물건만 멀쩡하다면 OK라는 생각이라면 관계 없지만, 민감하신 분이라면 오프라인 구매나 애플 온라인 스토어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싶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온라인 스토어는 택배 포장을 사실상 맞춤 형태로 하니까요).
박스에 붙은 한국어 정보에 따르면 2024년 6월 생산분입니다 (OS 버전은 2024년 5월에 배포한 17.5.1). 상자 안에는 본체, 브레이디드 USB-C 케이블, 20W USB-C 어댑터가 들어 있고 소문대로 종이 패킷 모음에 애플 스티커는 빠졌습니다.
애플은 '소비자' 제품에만 유채색을 쓴다는 농담 때문에 이번에는 블루를 구입했는데 iPhone 16처럼 과감한 배색이 아닌 채도 낮은 색감이어서 사진으로든 실제 눈으로든 파랑보다는 밝은 회색 느낌입니다.
같은 Pro 라인이 아닌 Air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개선(예: SoC가 A12Z에서 M2로 바뀜)으로 볼 수 없는 차이점이 제법 있는데요. 해당 '차이'를 애플 스펙 페이지 기준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디스플레이 대각선 길이가 0.3cm 작음
- 무게는 조금 더 가볍지만 (각 471g, 462g) 두께는 소폭 증가(5.9mm, 6.1mm)
- 디스플레이 밝기는 각 최대 600니트, 500니트(ProMotion 부재).
- 울트라와이드 카메라, LiDAR 스캐너 없음[다만 UW 카메라는 Pro (M4) 에도 사라짐]
- Face ID에서 Touch ID로
- 스피커가 4개에서 2개로
- Pencil 호환 모델 변경(2세대에서 Pro)
전면을 비교해보면 스펙 상으로는 디스플레이 크기가 조금 작지만 눈으로는 차이를 구별하기가 힘듭니다. 무게 차이도 손으로는 느낄 수 없을 정도. 오히려 전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전면 카메라 위치가 긴 쪽(상단 버튼 기준 오른쪽)으로 옮겨진 부분인데요. 1주일 사용했지만 아직도 세로로 들고 있을 때 오른쪽 중간에 뭐가 묻었나 흠칫하게 됩니다. 뒷면을 보면 카메라 범프가 다른데, 의외로 케이스 없이 바닥에 놓았을 때 덜컹임은 Air 쪽이 조금 더 컸습니다. 다만 보통 케이스나 스탠드를 사용할 것이기에 큰 문제는 아니겠지요.
스피커의 경우 Air의 구멍 갯수가 Pro 대비 적습니다. 참고로 모양을 맞추기 위해 Pro처럼 상하 두 군데씩 구멍이 나 있지만 분해 영상을 보면 물리적 스피커는 양 쪽 Pencil 부착부와 카메라가 있는 오른쪽에 위아래로 하나씩 달려 있어. 그래서 좌우가 구별되는 테스트 음원을 틀었을 때 가로로 놓으면 좌우 구별이 선명하지만 세로에서는 묘하게 뭉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보통 iPad로 보는 콘텐츠는 음향 좌우 분할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어서 큰 단점은 아니겠지요. 스피커는 절반이지만 위치를 바꿈으로서 초기 iPad처럼 소리가 밑으로만 나오지 않아 답답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이전 기기에서의 데이터 이전은 수월하게 되나 싶었더니 요상한 버그를 만났습니다. iOS 백업 파일은 백업한 기기보다 버전이 낮은 기기에는 복원할 수 없는데(반대의 경우는 가능), 설정 마법사에서는 버전 차이를 확인하고 자동으로 업그레이드한 뒤 복원 절차를 다시 진행할 것처럼 보여주지만 사실은 업그레이드 화면에서 무한 로딩에 걸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진행 바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시간이 안 가는 건가 하면서 다른 일 하면서 기다렸지만, 시간 경과를 보니 정말로 너무 오래 걸려서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이미 관련 문제를 겪은 수많은 레딧 글이 나오더군요.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옮길 iOS 기기를 새로 설정한 뒤 OS 업데이트를 끝내고 다시 초기화 해서 설정 마법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대 120Hz 주사율을 지원하는 ProMotion 부재는 물론 아쉽지만, ProMotion 하나만 보고 iPad 하나를 더 구입할 수 있는 60만원을 추가 지불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각오하고 구입한 사항이었습니다. 첫 날에는 ’애니메이션이 어색한데?‘라는 위화감이 있었지만 2~3일 지나니 뇌내 다운그레이드가 끝났는지 더 이상 모르겠더군요아쉽게도 Pencil이 없어서 필기 쪽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네요). 다만 iPhone도 꿋꿋이 기본 라인 최저 용량을 구입하는 사람이고, PC 모니터도 FHD 60Hz 사용하는 사람이라 이런 부분에는 무던함을 감안하고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이전 문단에서 펜슬 이야기를 꺼냈으니 이야기를 풀어 보자면, 상술했듯 카메라 하우징이 오른쪽으로 옮겨가면서 펜슬 부착부가 바뀌었습니다. 2세대 펜슬을 가져다 대면 엉성하게 달라붙기는 하지만, 당연히 기기에서 인식하지는 않지요. 재밌는 건 아직 Pencil Pro 지원 기기가 소수여서 속칭 '짭플펜슬'로 불리 모조품 시장에서는 아직 새 자석 배치를 지원하는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더군요. 그런 사람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펜슬은 하나인데 기기는 여러대이면 USB-C 제품이 호환성이 좋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Touch ID의 경우에는 iPad는 어느 방향으로도 들 수 있음을 감안해서인지 인증이 필요할 때에 항상 상단 버튼 아랫쪽에 'Touch ID' 글자를 띄워 주는 게 재밌더군요. 요즘 iOS 기기는 디스플레이를 탭해서 활성화하는 게 일반적인데, Air에서는 ‘탭하고 상단 버튼 터치하기’는 두 단계이니 상단 버튼으로 켜서 본인 인증을 함께 하는 걸 습관으로 들여야겠지요. 어떤 방향에서도 쉽게 본인 인증할 수 있게 왼쪽/오른쪽 검지를 등록해 두었습니다.
이번 기변으로 확실하게 개선된 부분 중 하나는 SoC일 텐데요. 긱벤치 기준으로는 Pro 11” 2세대(A12Z) 대비 2024년 Air M2가 CPU 싱글/멀티 성능은 약 2배입니다.
이를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스테이지 매니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 iPad Pro에서는 외부 모니터 연결이 미러링으로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iPad와 외부 모니터 양 쪽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해당 기능이 16에서 처음 도입되었을 때 PR 때문에 뒤늦게 소급해 과거 기종 지원을 추가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다만 해당 기능을 테스트하면서 예전에 구입한 USB-C 허브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예 화면이 뜨지 않아 당황했는데 이건 모니터와 iPad 모두 재부팅하고 나니 연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5초마다 연결이 끊기더군요. 그래서 케이블 문제인가 싶어 PC에 쓰던 HDMI 케이블에 연결해보니 출력이 잘 되더군요. 그래서 '케이블 문제였나' 하며 재시험을 위해 이전 케이블을 체결하니 언제 말썽을 부렸다는 듯 평범하게 연결되는, IT 담당자의 악몽같은 현상을 겪었습니다.
덕분에 위에 첨부한 설정샷을 찍는 데에도 10분 정도 진땀을 흘려야 했는데요. 현재로서는 허브가 가장 의심스러워 환율이 내리면 HDMI 출력이 있는 다른 USB-C 허브를 구입할 생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 셋째주에는 환율이 오르기만 하네요.
렌즈는 하나이지만 줌 렌즈가 없는 iPhone 일반 라인처럼 디지털 줌 2x 버튼을 제공합니다. 명색이 Air 단평이니 구색 맞추기 위해사진은 첨부했습니다만 어차피문서나 책 스캔 외에는 쓸 일이 없으니 중요한 기능도 아닙니다. 항상 키노트 시연으로만 보던 사람을 따라오는 전면 카메라 기능인 '센터 스테이지'도 테스트해보니 신기하긴 하더군요.
오히려 플래시가 없어졌다는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뒷면 카메라 하단에 동그란 부분이 있어 당연히 플래시인 줄 알았는데 마이크였더군요(확인해보니 M1 SoC 탑재한 전 세대 Air에도 플래시는 없었네요). 올해 Pro 특장점 중 하나로 플래시가 문서 스캔할 때 쓸모있다는 대목까지 있었던 걸 생각하면 Air에도 문서 스캔용으로 달아주지 싶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프로 기능’으로 차별하나 싶었는데, 이번주에 보도자료로 출시한 mini 7세대에는 아직 플래시가 있는 게 재밌는 부분이랄까요.
iPhone에는 오래 전부터 추가되어 있던 '배터리 성능' 페이지가 iPad에는 2024년 출시한 Pro(M4)/Air(M2)에서야 추가되었습니다. 이전 제품은 내부 로그를 뜯어보거나 애플 측에 (원격) 점검을 의뢰해야 알 수 있었던 내용인데요. 재밌는 건 생산월은 2024년 6월인데 배터리 제작 년월은 2024년 5월이라는 점. 충전은 0% 에서 시작했을 때 최대 25~26W를 끌어가고 모든 배터리 있는 전자기기가 그렇듯 단계적으로 내려갑니다. 기본으로 20W USB-C 어댑터를 제공하지만, 요즘은 저렴한 멀티포트 어댑터 하나 갖추고 있어도 나쁘지 않겠지요.
처음에 가로 회전 상태에서 음량이 제 의도와 반대로 조절되어서(‘오른쪽‘ 버튼이 음량을 커지게 함) 뭔가 싶어 검색해보니, iPad 최신 기종의 경우 기기 방향에 따라 볼륨 위/아래가 바뀌도록 되어 있더군요. 지원 문서를 찾아보니 예전 기기에서는 설정-사운드에서 해당 기능을 토글할 수 있었지만 최신 기종은 항상 켜져 있는 게 기본이라 합니다.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한동안은 계속 실수할 듯 하네요(그나마 자주 사용하는 세로 방향에서는 변함이 없는 게 다행).
함께 구입한 스마트 폴리오 케이스는 본체 색에 맞춰 '데님' 색으로 구입했는데, 어지간한 파일보다 단단한 종이 상자 안에 딱 맞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처음 폴드형 케이스가 나왔을 때처럼 ‘눕히기‘와 ‘세우기’가 가능한데 후자의 경우 전작과 달리 케이스 뒷면 쪽의 자석으로 지지대 삼각형 각도를 어느 정도까지는 조정할 수 있습니다.
타블렛은 출시된 이래로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제품군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계륵같은 제품임을 빗대는 타블렛병, iPad병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있을 정도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호사가들이 “생산적”이라며 숭앙하는 PC 앞에서도 제 기준으로는 뭘 그리 대단한 걸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는 그냥 상황과 용도에 맞게 쓰면 된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제품 이야기로 돌아가, 처음 말씀드린 대로 구입 자체는 충동적이었지만 고민 자체는 올 상반기 iPad Air가 출시되었을 때부터 해 왔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6개월 고민 후 구입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1주일간 평상시와 같은 루틴으로 사용해봤을 때에는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Pro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가격 차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고요. 앞으로도 애플이 Air 라인을 계속 출시해서 다음 교체 시기에도 선택지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다시 훑어보니 원래는 구매 인증샷 느낌으로 시작한 글감에 사용하면서 떠오른 이런저런 단상을 추가하다보니 글에 짜임새가 부족한 게 눈에 밟히네요. 최대한 흐름이 있도록 가필, 편집했지만 여전히 단평들을 모아놓은 느낌이 강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최신 LLM에게 ‘가필’시킨 글보다 못 쓴 ‘오가닉 텍스트’를 끝까지 읽어주신 데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