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iPad Air 단평에서도 썼듯이, Apple Pencil 스펙이 바뀌면서 올해 출시한 제품부터는 2세대 제품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전 라이트닝 포트에 끼워 놀림감이 되었던 1세대부터 의무감으로 구입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캘리그래피 급으로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아니다보니 PDF 밑줄 긋기나 마인드맵 그리기 정도로만 간간이 사용해 이번에는 구입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만약 사더라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USB-C 버전이나, 통칭 '짭플펜슬'로 불리는 유사품을 구입하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직 Air에 지문도 많이 찍히기 전인 지난 13일, 미국 아마존에서 90달러에 Pencil Pro를 판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림셈으로도 정가보다 훨씬 저렴하니 '이건 기회다' 싶어 바로 주문하려 했더니 해외 배송은 지원하지 않더군요.
일본 구매대행은 몇 달에 한번씩은 하지만 미국 쪽은 온라인 결제는 제법 했지만 물건을 받아야 하는 건은 아마존 직구 외에는 해 보지 않아서 적당한 배대지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습니다. 한창 '직구' 키워드가 오르내리던 시절에는 너도나도 미국에서 세금 없는 주의 물류창고를 빌려 배대지를 열었지만 팬더믹 이후 저가 시장은 알리익스프레스로 상징되는 중국발 제품이, 고가 시장은 환율과 부가세/관세가 수문장처럼 틀어막고 있어 예전만큼 업계가 활발하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다른 곳을 몇 군데 알아봐도 수수료가 큰 차이 없어 이전 적립금이라도 건지려고 일본 배대지만 이용해봤던 회사의 미국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아마존 프라임 가입 없이도 미국내 무료 배송을 지원하는 상품이어서 그 쪽을 선택했는데, 의외로 무료 티어임에도 배송이 빨리 진행되어 나흘만인 16일 현지 배대지 창고에 도착했습니다. 상술한대로 처음 이용해보는 서비스여서 입고는 잘 되려나 걱정했지만 하루만에 입고처리가 되어 한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주말이 끼여 실제 제품은 그 다음 화요일인 22일에 받았습니다.
참고로 Pencil Pro는 상자 디자인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열어보면 펜과 설명서만 딱 들어 있는데, 1세대에는 교체 촉도 지급했지만 2세대부터는 없었으니까요.
자석 때문에 의외로 나란히 두고 샷을 찍기 힘들었던 2세대와 Pro 비교샷. 스펙 상으로는 Pro가 약 1g 더 무겁지만(스펙상 각각 18.2, 19.15g), 실제로 손에 쥐어보면 알 수 없을 정도이고요. 그리고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긴 합니다만) 2세대는 몇 년 간의 UV 노출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신품에 비해 노란끼가 도는 데에 놀랐네요. 손때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손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도 균일하게 색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용해봤을 때 가장 놀랐던 건 햅틱 기능. 맥 트랙패드에서 진짜 버튼을 없앤 이래로 애플이 가짜 눌리는 느낌은 참 잘 만든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버 기능도 소개 영상으로 봤을 때에는 보여주기용 기믹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써 보니 한 리뷰어 평가처럼 '보이지 않는 커서' 느낌이어서 생각보다는 유용하더군요. 옛날 PDA 시절 스타일러스 감성으로 Pencil로 조작을 많이 한다면 실용적일지도? (아쉽게도 호버 상태에서 사이드를 클릭한다고 터치로 인식하지는 않더군요)
이번 제품도 리디에서 책 넘기기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겠지만 그래도 없으면 허전한 것도 사실이니 후회는 없어. 하필 결제 이후 원/달러 환율이 우상향이어서 초기 계산보다는 단가가 높아졌지만, 그래도 리셀러 할인가까지 포함한 국내 정품보다는 유의미하게 저렴하게 샀으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