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이어 이어폰은 끼우면 귀가 간질간질해 못 쓰는 체질이라 (요즘 복고로 유행이 돌아오는 듯한) 유선이어폰 시절부터 오픈형만 사용해 왔는데요. 하지만 음질을 좋게 하려면 바깥 소음을 물리적으로 막는 게 가장 좋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참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죠. 그나마 애플이 EarPods 만들던 가락이 있어 인이어/오픈형 투트랙으로 가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가 TWS 이어폰을 말 그대로 찍어내 '월간' 칭호까지 붙은 QCY 사의 오픈형 제품인 AilyPods (모델명 T20)을 구입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신상품이 없나 찾아보니 AilyBuds Pro (모델명 HT10)라는 제품이 2024년 5월 출시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가격대는 글 작성 시점에서 2만원대 중후반). 참고로 AilyBuds Pro+가 있는데, 그 차이는 멀티포인트와 LDAC 지원 유무입니다. 어차피 애플 기기와는 별 관계 없는 코덱이라 몇 천원이라도 저렴한 일반 라인으로 구입했습니다.
이번에는 쿠팡 로켓직구로 구입했는데요. 쿠팡의 미심쩍은 행보에도 '그래도 여기만한 데가 없다'며 자발적으로 해당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특별히 '불매'한 것도 아닌데 정말 사용하지 않아 몇 달만에 로그인할 때마다 미사용자 대상 쿠폰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번에도 1.5만원짜리 쿠폰이 들어와 있어 실 결제액은 1만원대였습니다.
색깔은 흰색, 검은색, 파란색, 녹색이 있는데 마침 검은색이 1천원 더 싸서 이 쪽으로 구입했고요. 11일에 결제해 14일에 관세청에서 통관 완료 통보가 왔고, 휴일이 지난 16일 패키지가 도착했습니다.
여담으로 쿠팡의 해외직구 거래 담당-정확히는 중국 쪽 직구 거래 전담-이 삼성SDS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성SDS 하면 막연하게 IT쪽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2023년 홍보성 기사에 따르면 매출 60%가 물류 쪽에서 나온다고. 다만 통관 소장을 찍어보면 수입 선사나 특송업체는 별도의 업체인 걸 보면 실제 업무는 하청을 주는 모양입니다.
QCY 특유의 간단한 패키징을 열어보면 본체(이전과는 달리 유닛을 케이스에 합쳐둔 상태로 포장), USB A-C 케이블, 설명서가 들어 있습니다.
제품 첫 인상은 동글동글한 조약돌 느낌입니다. T20 때도 느꼈지만 힌지는 어디서 가성비 좋은 업체를 찾았는지 딱딱 열리고 이음새에서 기분나쁜 삐걱거림이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기술적 이유인지 디자인적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뚜껑이 사선으로 달려 있어서 한 손으로 열기는 힘들더군요.
T20의 경우는 케이스가 열리는 방식부터 유닛 모양까지 AirPods 열화판 느낌이었다면 HT10은 적어도 데드카피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개별 유닛은 '콩나물형'이라 크게 보면 비슷할 수밖에 없지만 이조차도 바깥쪽에 유광 바를 추가해 어느 정도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유닛은 AirPods 대비 '콩나물' 막대 부분이 약간 깁니다. 버니어 캘리스퍼로 측정하지는 않았지만 눈대중으로 유닛도 약간 큰 느낌이라 귀가 아플까 걱정했는데 적어도 제 귀에는 올바르게 착용하면 이물감,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 귀는 유닛이 조금 커져 1/2세대 대비 호불호가 갈리는 3세대 디자인도 무난하게 품었던지라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네요.
일단 iPhone에 연결하고 바로 청음해보니 동 회사의 T20은 고사하고 예전에 KTX 특실에서 공짜로 주던 이어폰보다 조금 나은 말 그대로 '깡통' 소리가 나서 식겁했습니다. 그래도 목소리 듣기에는 괜찮나 싶어 팟캐스트를 틀어 봤지만 이 쪽도 '이거 맞아?'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릴 정도.
제품을 기다리며 검색해보니 나름 평이 나쁘지 않더니만 다들 '스폰서' 영상이었나, 하며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적응형 EQ를 켜면 전혀 다른 제품이 된다는 말이 있더군요. 바로 QCY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이를 활성화해보니 소리 프로파일이 상전벽해로 달라졌습니다.
다만 결국은 EQ 놀음이라 유닛 자체의 한계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속해서 같은 곡을 HT10과 AirPods으로 순서대로 들어보면 베이스는 너무 높여놔서 곡에서 뭔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지만, 보컬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 체급이 다르긴 하구나 싶더군요. 또한 본인 숨소리나 배경 노이즈를 깔끔하게 편집하지 않은 팟캐스트를 듣는다면 해당 EQ에서는 해당 부분이 증폭되는 부작용도 있어.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기기와 연결할 때마다 EQ가 '기본'으로 리셋되어 바로 진동하는 깡통 소리로 되돌아간다는 부분인데요. 이것도 관련 검색해보니 오른쪽 유닛을 롱 탭(1.5초 이상)하면 ANC를 활성화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적응형 EQ도 함께 활성화되는 걸 이용하는 편법을 권하더군요(ANC를 꺼도 EQ는 적응형으로 유지됨).
그리고 적응형 EQ/ANC 모드를 설정할 때 매 번 중국 이어폰 특유의 억양 있는 영어로 통보한 이후 전환되는 것도 아쉬워. 프로그램 내 옵션을 찾아봐도 알림 소리 크기는 조절할 수 있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더군요. 직관적이지는 않지만 차라리 비프음 횟수나 길이로 알려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상술했듯이 오픈형인데도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NC을 지원합니다. '오픈형에 ANC를?' 했는데 삼성 갤럭시 버즈 라이브나 버즈3)에도 들어가는 걸 보면 처음 생각보다 이상한 조합은 아닌 모양. 당연히 인이어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효과가 있더군요. 수령하자마자 실내에서 테스트해볼 때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조차 안 없어져 '이거 플라시보 아냐?' 했는데-후술하겠지만 이건 알고리즘의 부족 때문으로 보여-바깥에서 사용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차에 앉아 ANC 활성화하면 엔진 공회전 소리나 에어컨 바람 소리가 체감할 수 있을만큼 감소하고, 길가에서는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소리가 절반 정도는 줄어듭니다. ANC 원리 상 고주파는 알고리즘적으로 차단하기 어려워 물리적으로 막아내는 부분이 더 크다고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주변 소리를 못 들어 위험할 정도로 바깥 소리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따로 '주변 소리 듣기' 모드가 없는 게 이해가 돼).
다만 QCY가 사용하는 ANC 알고리즘이 신통찮은지 시끄러운 장소에서 바깥 소리를 제대로 상쇄하지 못해 특정 소리가 '튀거나' 너무 과하게 보정해 먹먹하게 '공기 빠진' 느낌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ANC를 껐다 켜면 환경을 재계산해서 정상적인 단계로 맞춰 줘. 게다가 다른 리뷰어에 따르면 알고리즘이 능동적으로 ANC 단계를 조절하지 못하고 설정하는 그 시점의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는 걸로 보인다고. 저도 전문가는 아니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실내/실외를 오고가면서 들어 보면 능동 조절이 되지는 않는 느낌.
연결 거리는 집에서 벽 때문에 확실하게 블루투스가 끊기는 걸 알고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소리가 끊기기 시작하는 걸 보면 AirPods 대비 조금 짧은 느낌입니다. 이것도 알고리즘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AirPods은 전파가 약해지면 디지털 식으로 뚝 끊긴다면 QCY는 마치 영화에서 극적인 연결 끊김 효과를 넣을 때처럼 소리가 점점 왜곡되고 끊기다 완전히 조용해짐.
AirPods 3 대비 장점은 반 농담으로 USB-C 충전이 가능하다는 점? 물론 이것도 9월에 루머대로 4세대 제품이 출시되면 내놓을 수 없는 장점이긴 합니다만.
총평을 내자면, 가격 대비 하자가 있는 제품으 아니지만 기본 EQ가 너무 별로이고 연결할 때마다 재설정해야 한다는 아쉬워 선뜻 추천하고 싶지도 않아. 오픈형 TWS를 쓰고 싶지만 물건을 너무 잘 잃어버린다거나 가성비를 챙기고 싶다고 하면 2만원대인 QCY T20을 구입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