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은 셀카봉 겸 삼각대 구입 이야기이지만 왜 셀카라고는 찍는 일이 없는 사람이 이걸 구입하게 되었는지에서부터 글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2008년부터 ‘일기’를 다이어리에 써 왔는데, 왜 그랬는지는 이제 와서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기술 러다이트여서 그런 건 아니고, 아마도 ‘디지털 시대일수록 중요한 손으로 쓰는 경험’같은 감성 한 스푼 섞인 글을 읽고 결정했을 테지요. 결국 2016년부터는 전자 형태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재밌는 건 이후 두어 해는 백업의 의미로 같은 내용을 디지털로 한 번, 다이어리에 한 번 적었습니다), iOS 프로그램 Day One을 쓰기도 했지만 이후 txt 파일로 지금까지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서기 2023년에 왜 좋은 프로그램을 놔두고 굳이 서식도 없는 텍스트 파일이냐? 라는 질문을 하실 수 있는데, 그나마 컴퓨터 파일 중에서는 가장 종속성이 낮기 때문. 조금 과장해서 1990년대 DOS 시절에 썼던 텍스트 파일이라도 지금 컴퓨터에서 파일 인코딩만 손대면 읽을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일정관리 프로그램에 비망록을 썼다면 지금 다시 읽어보려면 여러 의미로 고달팠겠죠.
이와 같은 이유로 약 8년간의 기록은 아날로그 다이어리에만 남아있는데 백업해놓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언제 만나면 밥 한끼 하자'처럼 공허한 약속으로 남아있는 상태였죠. 2021년에 (프린터 부분이 고장난) 복합기 스캐너로 밀어보기도 했지만 품이 많이 들어서 2년치 를 스캔한 뒤에는 다시 방치되었습니다.
지난 주 애플 WWDC 2023에서 저널 프로그램을 발표한 영향인지 책장에 늘 꽂혀있던 다이어리가 다시 한 번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한 문서 스캐너를 쓰면 작업이 훨씬 빠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와 프로그램 보정 성능이 향상되면서 개인 용도로는 종이책도 스마트폰만으로 스캔하는 경우가 꽤 있으니까요.
시험삼아 vFlat을 인용해 한 해치 다이어리를 스캔해 봤는데, 가장 잘 되었을 대는 복합기 스캐너보다 깔끔했지만 손의 흔들림이나 각도 등 환경이 나빠지면 조금 과장해서 산업 스파이가 급하게 훔친 서류 사진을 찍어 놓은 느낌이더군요.
여기서 드디어 글 제목인 셀카봉/삼각대의 필요가 등장합니다. iPhone을 간이 삼각대에 세우고 독서대를 마주보게 한 뒤 직사광을 비추면 사용자 에러를 줄여 작업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인데요. 이 쪽 세계도 비싼 제품을 사려면 한도 끝도 없지만, 1만원 미만으로 삼각대 겸 셀카봉이 되는 제품 구입했습니다.
실제로 받아보니 딱 가격만큼의 만듦새더군요. 셀카봉 기능이나 폰을 물어주는 고정부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삼각대 기능은 외부에서 쓰면 바람이나 비스듬한 바닥 때문에 세워두면 (저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AppleCare+의 파손 보험을 정당하게 수령하는 방법으로 쓰기에 딱 좋겠더군요. 다만 평평한 책상 위에 놓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잆어. 게다가 셀카봉용 카메라 촬영 버튼을 별도로 분리해 사용할 수 있는 건 괜찮겠더군요.
여담으로 스프링 장력식 핸드폰 걸쇠가 손가락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보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처음 세팅용으로 몇 번 만지작대다 바로 중지를 집혀 피를 봤습니다. 진지하게 목장갑을 끼고 사용해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조만간 위에서 말한대로 간이 스캐너로 사용해본 뒤 사용 경험이 괜찮으면 별도 글을 올려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