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방을 밝히기 위해 전등 스위치를 켰는데,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리다 이내 꺼지더군요. 대수롭지 않게 '벌써 수명이 다 되었나?'하며 동네 전기용품점에 가서 형광등 두 개를 구입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게 글로 남길만큼 번거로운 일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의자를 가져와서 조명기구 뚜껑을 열고 형광등을 교체한 뒤 스위치를 켰는데, 여전히 조명에서 불규칙한 떨림이 나타나고 설상가상으로 고주파음까지 나기 시작해 급히 스위치를 껐습니다. 형광등 불량인가 싶어 위치를 바꿔봤으나 여전히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걸 확인하자 문득 안정기 문제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안정기 사양을 확인하고 다시 전기용품점까지 뚜벅뚜벅 걸어가 안정기 한 개를 부탁드리니 사장님께서 "아까 전등 사 가시더니 교체해도 불이 안 들어오시나보군요?"하며 말을 걸어 주시더군요.
시대의 흐름에 맞춰 LED 조명으로 교체하면 이상적이겠지만, 마음대로 조명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안정기 교체라는 저렴한 해결법을 선택했습니다. 참고로 기존 형광등 시스템에 연결할 수 있는 LED 램프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일반 형광등 대비 가격이 비싸고, 검색해 본 바로는 경우에 따라서 플리커링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더군요. 물론 판매 업체는 현행 판매 제품에는 위와 같은 호환성 문제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굳이 프리미엄을 주고 모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시 당면한 문제로 돌아가, 예전에 건물 관리자분이 교체하는 걸 참관한 적은 있지만 직접 하는 건 처음이라 막상 교체를 시작하려니 조금은 막막하더군요. 일단 심호흡을 하고 '조립은 분해의 역순'을 되뇐 뒤, 기존 안정기와 전등 플러그가 조명기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 후 십자 드라이버로 기존 부품을 탈거하고 같은 자리에 새 부품을 잘 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형광등까지 단단히 제 자리에 끼운 뒤 의자에서 내려와 벽에 있는 스위치를 켜러 가는 몇 초 동안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다행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게 들어오는 조명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여담으로 기존 안정기를 몇 년 동안 사용했는지 확인해보려 했는데, 조명기구 프레임이나 안정기에는 생산 일자를 알 수 있는 표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바로는 전자식 안정기의 수명이 약 7만5천시간(15년)이라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조명기구를 설치한 지 그만큼 오래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단가 문제로 저렴한 제품을 사용해 내구도가 낮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따름입니다.
* 2021-03-13 수정: FPL 호환 LED 램프에 대한 내용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