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에 막 빠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재밌게 본 애니메이션 원작-만화 혹은 라이트노벨-을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사 보는 게 낙이었죠.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듯이 풍파를 겪으면서 점점 충동보다는 고민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원작자가 손을 놔 버리고 완결을 내지 않거나, 라이센스 있던 출판사가 폐업하고, 애니메이션화 정도의 큰 떡밥 없으면 출판 우선 순위가 년 단위로 밀리는 등의 일을 겪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군요. (서브컬처 도서에 한정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유한한 공간도 문제입니다. 대형 중고서점이 등장해 고정 가격으로 매입하기 전까지는 구입할 때는 뜨거운 마음이었지만 이제는 차디차게 식은 도서를 종이 재활용함으로 보낸 책도 있었으니까요.
유루캠의 경우, 작품을 감명깊게 봤지만 관련 제품 구매에는 인색하였습니다. 같은 분기에 다른 작품이 있어 블루레이 구매도 하지 못했으니 만화책이라도 구매했을 법한데, 상술한 것처럼 고민만 늘어 선뜻 발매 권까지 장바구니에 밀어넣지 못하겠더군요. 몇 달의 발매 편차를 감수하고서라도 전자책을 구입하는 차선책도 고려했지만, 두 쪽짜리 그림 맞물림이 맞지 않는 등 감수가 신통찮다는 글을 보고 이 쪽도 썩 당기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중고서점에 유루캠 1권이 있어 홀린 듯 구매. 완결 안 된 작품을 추가하지 않으려 신간에서 보여도 외면했는데 말이죠(전자책은 스캔 관련 말이 있었던걸로 기억). 검색해보니 한국어판은 8권까지 나왔네요. pic.twitter.com/3bXCBhshW6
— 나가토 유키 (@nagato708) December 3, 2019
그렇게 만화책은 잊고 살았는데, 부정기로 들르는 대형 중고서점에서 책장을 훑다 유루캠 1권이 눈에 들어와 덥석 구입했습니다. 다행히도 1권만 있어 큰 돈 들이지 않고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길 수 있겠다고 뿌듯해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종류의 구매는 인터넷 논쟁만큼이나 회색 지대를 좋아하지 않음은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공감하실 겁니다.
중고매장 들를 때마다 “유루캠” 2권은 없나 살펴봤는데, 최근에 온라인 중고매장에 들어온 게 있어 구입. 여담으로 해당 만화책 ‘최상’ 구입가격은 전자책보다도 몇 백원 비싸게 매겨 묘하게 매력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pic.twitter.com/b00DFUHgne
— 나가토 유키 (@nagato708) August 12, 2020
다시 다음 권을 모아볼까하는 생각을 부추긴 건 블루레이 박스세트 발표였습니다. 이후 대형 중고서점에서 온라인 판매로 잡히는 물량이 없나 생각날 때마다 검색해보다 지난 달에는 2~3권을, 이번 달에는 글 작성 시점에서 중고서점에 풀린 마지막 권인 8권까지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유루캠 9권이 2020년 4월 발매이니 다음 달인 10월에는 중고 시장에 풀리겠군요. 이제 구매 열차에 올라탔으니 아예 팔아버리지 않는 이상은 다음 권을 모을 수밖에 없겠네요.
여담으로 대형 중고서점은 특성 상 책을 파는 입장과 사는 입장 양 쪽 모두 서 보게 되는데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이 흥미롭지요. 내가 책을 팔러 갈 때는 '이런 것까지 검사해서 평가를 깎나?'싶은데, 막상 구매자가 되어 매대를 살펴보면 '이런 상태인데 용케 받아줬네?' 싶은 상태의 책도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액체에 젖은 흔적이 있는 책은 매입불가 항목 중 하나이고, 이 때문에 폐지함으로 보낸 책도 몇 권은 됩니다. 하지만 매장에서 여러 권 중 유달리 싼 책이 있어 찾아가 보면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갈변과 더불어 액체 흔적까지 남은 책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매입 가부 및 등급은 사람이 하다보니 그 날 담당 직원의 업무량이나 기분 등 주관적인 요소가 크기 때문인가 싶습니다.
* 2020-09-07 추가: 매입처에도 윗 문단과 비슷한 취지의 문의를 넣었습니다. 해당 매장을 종종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지나간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라도 개선이 있으려면 피드백을 넣는 게 맞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주말에 접수해 월요일에야 답장이 왔는데 언제나 양질의 책을 매입하고 판매하는 게 자사 목표이지만 직원 개인에 따라 일부 소홀한 부분이 있었던 걸로 보이며 향후 신경쓰겠다는 교과서적 답변이 돌아왔네요. 실제로 해당 지점에 피드백이 내려가는지야 외부인이 알 수는 없지만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