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탁상시계 사기'가 글감이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쩌다 보니 일이 커져 글감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야기는 2021년 연말 스타벅스 프리퀀시 이벤트로 받은 브라운 탁상 시계(첨부) 가 지난 달 건전지 누액으로 사망하는 데에서 시작하는데요.
브라운 BC03 모델에서 디자인만 바꾼 제품으로, 가로/세로 78mm이니 원래 용도는 책상 앞에 놓는 시계이겠지만 저는 책장 위에 두고 공간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계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틀 연속 청소-정확히는 먼지떨이로 먼지 제거-할 때 바닥에 끈적한 액체가 나와 있는 걸 보고 대체 뭔가 싶어 샅샅이 찾아보니 시계 뒤쪽에서 건전지 전해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더군요. 이미 내부는 처참해서 배터리와 시계 모두 적절한 방식으로 폐기처분했습니다(그래도 시계는 그 꼴이 되도록 작동하고 있던 걸 보면 브라운이 제품은 튼튼하게 만드나 봅니다).
처음에는 어차피 사람이 있을 때는 항상 켜져있는 PC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으니 탁상 시계 없이 살아볼까 했는데, 있다 없으니 너무 불편하더군요. 결국 알리에서 탁상시계 키워드로 이런저런 제품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소를 가장 먼저 찾지 않은 이유는 여기서 산 탁상 시계에 데인 적이 있기 때문인데요. 시계 숫자가 크고 만듦새도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시간이 조금씩 느려져서 한 달에 한 번은 재설정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쓸데없이 LED에 편광이 들어가 있어 내려다보는 각도에서만 잘 보이는 것도 묘하게 불편했고요.
이 글을 준비하면서 다이소에 방문했을 때 탁상 시계 코너를 가 봤는데, 제가 구입한 제품은 더 이상 안 팔더군요. 어쩌면 제가 산 제품이 '꽝'이었고 요즘 입고된 제품들은 시간이 그 정도로 심하게 틀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시 알리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렴한 제품은 소개 사진만 봐도 다이소에서 파는 게 더 나을 수준이고 그렇다고 너무 비싼 건 알리에서 사기는 좀 부담스러워 하염없이 클릭만 계속하게 되더군요. 결국 다 관두고 다이소를 가야 하나 싶을 즈음 디자인도 나쁘지 않고 가격도 1만원 이하인 디지털 시계를 발견해 바로 주문했습니다(9월 25일 주문, 10월 2일 수령).
포장 상자는 알리 특유의 부실한 포장으로 올 때부터 뭉개져 있어 사진이 없네요. 소개 페이지 샘플 사진이나 뒤쪽에 자석으로 미루어보면 원래는 냉장고나 자석을 붙일 수 있는 화이트보드 등에 붙이는 콘셉트로 만든 제품인 모양. 다만 접이식 스탠드가 있어 세워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구입할 때에 눈치채지 못한 단점이 있는데, 기본 상태에서는 날짜가 안 보인다는 부분입니다. 막상 시간 설정할 때는 날짜를 입력하라고 해서 갸웃했는데 (다행히도) 영어판도 있는 설명서를 정독하니 뒤쪽 버튼을 누르면 날짜를 보여주는 기능이 있더군요. 현실적으로는 훨씬 빠르게 날짜 확인할 방법이 많으니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요.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하단 온/습도는 가독성 좋게 보여줍니다. '부엌용'이라 생각한다면 날짜보다 기온/습도가 우선인 게 이해는 되지만요. 글 작성 시점에서 근 한 달을 사용했는데 시간이 분 단위로 틀어지지 않은 걸 보면 성공한 구매라 생각합니다.
알리에서 구입한 탁상형 시계. 다이소에서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었지만 가격 대비(약 6천원) 모양이 예뻐 이 쪽에서 구입. 오늘 날짜를 뒷면 버튼을 눌러야 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지만, 혼자서 시간만 틀어지지만 않으면 성공했다 생각키로. (비교샷에 등장한 시계는 다이소 발) pic.twitter.com/H4Bn6jAveA
— Paranal (@nagato708) October 2, 2024
구입 당시 소셜 미디어에 새 탁상시계 인증샷을 올렸는데, 팔로어께서 일본에서 파는 탁상형 전파시계가 좋다는 언질을 주시더군요. 예전부터 궁금하던 제품이기도 하고, 이벤트로 받았지만 쓸 데가 마땅치 않아 쌓여있던 아마존 재팬 크레딧도 있어 세이코 BC402W 탁상시계를 구입했습니다(10월 3일 주문, 10월 10일 수령).
탁상시계 박스 3개는 들어갈 것 같은 큰 종이상자에 도착했는데, 누가 비용절감의 아마존 아니랄까봐 옆구리가 터져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시계 박스는 손상되지 않았지만요. 벌크 포장인 걸 보면 아마존 전용 상품인 것 같은데, 내부에는 본체, 설명서, 그리고 (요즘은 구성품에 잘 포함시켜 주지 않는) AA 배터리 2개가 들어 있습니다.
처음 건전지를 넣으면 바로 전파 탐색을 시작하는데, 일단은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하늘이 보이는 창가 쪽에 놓아 두었더니 5분 정도만에 시간을 잡았습니다. 구입하기 전부터 실내에서도 일본에서 보내는 시보 전파를 잘 잡을 수 있을지가 가장 궁금했는데, 평상시에 놓아두는 자리에두어도 전파를 수신했다는 알림이 잘 떠 있더군요.
설명서에 따르면 오전 2시 기준으로 매 3시간마다 전파를 수신해 시간을 교정한다고 합니다. 동 설명서에 따르면 쿼츠 스펙이 +-30초이면서도 굳이 초침까지 보여주는 건 언제나 전파로 '정확한' 시간을 받는다는 걸 자랑하기 위한 기믹이 아닐까 싶어.
다만 중기 사용해보니 수신을 못 할 때가 가끔씩 있더군요. 보통은 흐리거나 비가 올 때에 발생하긴 합니다만, 별 이슈가 없는데도 전파 수신 표시가 없어져 있을 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안절부절못하고 시간에 맞춰 창가에 놓아두거나 했지만 이제는 다음 수신 사이클에 돌아오겠지 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비슷한 제품을 사용하고 계신 팔로어분께 여쭤보면 실내 어디에 두어도 그런 증상은 없었다고 하는 걸 보면, 지역보다는 근처 건물이나 지형 등으로 인한 전파 방해가 어느 정도 심한지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
상단 버튼은 알람이 울릴 때는 스누즈, 평상시에는 조명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조명 색은 은은한 주황으로 어두울 때에도 자극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저가형 시계에서는 흔한 백라이트 고주파음도 없더군요. (저는 그렇게 비치하지 않았습니다만) 침대 옆 테이블에 시계를 놓는다면 유용하겠지요.
오브제에 가까운 디자이너 아날로그 시계도 아닌, 디지털 탁상 시계를 3만원대에 구입하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고 상술한대로 상황에 따라 전파 수신이 간헐적일 수 있기 때문에 남에게 추천하기는 애매하지만, 저는 만약 고장난다면 재구매할 의사가 있을 정도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본문에서 시간이 잘 맞는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는, 편견과 달리 전자 시계도 시간이 틀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이소 탁상시계 이야기도 했지만, 몇 년 전 본가에 USB로 전원 공급받는 백라이트 형 디지털 시계는 다이소 시계와는 달리 시간이 빨라진다는 컴플레인을 받았었거든요.
당시 '디지털 시계인데 왜 오차가?' 싶어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저급 쿼츠를 쓰면 오차가 커져 그럴 수 있다더군요. 어차피 중국에서 떼 오는 거겠지만 그 정도 품질로는 장사 오래 못 하겠군, 했는데 몇 달 전 막 오픈한 가게에 똑같은 디자인의 시계가 놓여있는 걸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