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iPhone 15과 함께 출시한 파인우븐Finewoven 케이스는 출시와 동시에 비판받기 시작했고 올 초에는 사용하다 보면 '너무 익은 바나나'처럼 더러워진다는 혹평까지 받았는데요. 아직은 루머이지만 이번 시즌을 끝으로 단종될 수 있다는 소문을 인용한 글을 보고 갑작스럽게 청개구리에 빙의해 이를 구입했습니다.
평상시에는 기기를 케이스 없이 쓰는 사람이지만, 아웃도어 활동이 많은 날은 착용하는 패턴입니다. 그래서 이미 iPhone 15와 함께 구입한 플라스틱 하드케이스를 갖고 있습니다만 MagSafe 미대응인 탓에-그래서 라인업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손이 가지 않아 겸사겸사 구입한 것도 있습니다.
오픈마켓 몇 군 데를 검색해보다 쿠팡에서 누가 봐도 인기가 없어 보이는 토프 색이 51,000원으로 다른 색보다 저렴해(정가는 85,000원) 바로 구입하려고 로그인했는데, 오랜만에 접속했다며 웰컴 쿠폰 15,000원까지 제공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결제했네요. 이 글을 정리하면서 검색해보니 색깔 별 가격 차이가 없어진 걸 보면 좋은 의미로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모양.
포장상자는 기존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한 가지 특이사항은 후면 스티커에 중국어로 시작해 베트남어(추정), 태국어 표기가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주문 내역을 재확인해봐도 로켓배송이니 제삼자가 역수입한 건 아닐테고, 본사에서 재고관리 차원으로 섞는걸까 싶네요.
일단 색깔부터 이야기하자면 토프는 좋게 말해 고풍스러운데, 예전에 유행했던 코듀로이(통칭 '골덴') 바지가 생각나는 발색입니다. 리뷰를 읽어보니 Pro 라인업에 있는 내추럴 티타늄과 잘 어울린다는 말이 있는데, 블랙 iPhone 15의 '카메라 섬' 부분과 딱히 충돌하는 느낌은 아닙니다 (핫딜 가격에 눈이 돌아가 색 배합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정품 케이스를 구입한 적도 있는지라 이 정도면 선녀이지요).
사진이나 촘촘하게 짜인 직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파인우븐 케이스도 '골덴' 느낌이 날 줄 알았는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예전 어린이용 지갑이나 가방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직조 느낌입니다(제가 적어놓고도 좀 막연하긴 하네요). 뒷면은 사진에서도 보일 정도로 꿰멘 느낌이 선명하지만, 옆면은 처음에는 카메라 범프 테두리처럼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나 착각했을 정도로 촘촘하게 엮여 있습니다. 버튼은 이전 가죽 케이스처럼 별도 금속 버튼으로 만들어 제삼자 케이스와 차별점을 주는 건 여전하고요.
iPhone에 착용한 뒤 반나절을 사용해보니 왜 리뷰어들이 출시 직후부터 삼지창을 들고 몰려들어 '이런 걸 가죽 케이스 대체품으로 내놨단 말야?!' 하고 화낸 이유는 알겠더군요. 물론 그 분들은 그렇게 '화'가 많아야 트래픽 벌 수 있는 직업임은 감안해야겠습니다만.
이건 파인우븐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USB-C 케이블 중 (구조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튼튼함을 강조한답시고 플러그 부분을 크게 만들어 둔 제품은 하단 USB-C 단자 '입구 컷'이 됩니다. 집에 있는 여러 회사의 다양한 모양의 케이블을 연결해보니 눈으로 보기에도 플러그 부가 큰 제품은 여지 없이 걸리더군요.
그나마 MFi 덕에 크기 표준이 있었던 Lightning과 달리 USB-C는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차라리 MagSafe로 충전하라는 배려인가 싶기도 합니다. 다만 케이스 물성 상 흔적이 남는다는 걸 생각하면 또 그게 맞을까, 싶기도 하고요.
당연히 MagSafe 지원이기 때문에 충전 액세서리나 부착형 지갑도 잘 붙습니다. 스펙 상 자력은 정품 대비 강력하지만 자석 배치를 잘못해 주머니에서 휙휙 돌아가던 다이소 발 지갑이 케이스와의 마찰력 때문인지 케이스가 없을 때보다 좀 더 안전하게 붙어 있더군요.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열흘 정도 사용했는데, 가죽 케이스의 후신답게 훼손이 빠르기는 하더군요. 일부러 흠을 잡으려고 돋보기를 들지도 않았는데 후면과 측면에 이미 지워지지 않는 찍힘이 생겼더군요. 그리고 MagSafe 카드 지갑이 붙는 부분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좌우 마찰 때문인지 빛 각도에 따라 살짝 이질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장기간 사용하면 이것도 영구적으로 남는 흔적이 될 걸로 보입니다.
애플 가죽 케이스도 시장에서 가장 튼튼한 제품은 아니었으니 과도한 비판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최소한 가죽은 물성 때문에 찍힘이나 손기름 등에 약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으니까요. 글을 시작하며 자칭 기술 기자들이 '트집을 위한 트집'의 선수라 했고 그 명제 자체는 바꿀 생각이 없지만, 적어도 이 케이스에 대해서는 정당한 비판을 했다고 평가해 주어야겠네요.
다만 역시 서두에서 인용한 소문대로 파인우븐을 포기하고 케이스 액세서리를 다른 재질로 바꾼다면 무엇이 될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한 때는 '레자'라는 멸칭으로 불렸던 인조 가죽이 '비건 레더'라고 재포장되어 주목받지만 이 쪽은 결국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친환경 대안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