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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2017)

category 서브컬처

헐리우드와 일본 영화계 모두 애니메이션/만화 원작 리메이크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점점 귀해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판권을 살 수 있고 (결과물이 어떻든) 원작 팬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더군요.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이제 몇 번째인지 세기도 힘든 "데스노트" 장편 영화를 공개할 예정이고, 심지어는 일본에서는 올 7월 "은혼" 실사 극장판이 개봉 예정입니다.

그런 빅 웨이브에 올라탄 영화 중의 하나가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2017)입니다. 소령 역이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것 외에는 사전 정보도 없이 들어갔습니다. 애초에 영화나 TVA도 본 지가 10년도 넘었으니 구체적인 내용도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데다 그냥 이름만 따 온 다른 작품이려니, 하고 보면 괜찮으리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 예상은 시원하게 깨졌습니다.

아라마키 과장 역은 일본 감독이자 배우인 키타노 타케시가 맡았는데, 배우의 일어와 영어 자막 그리고 한국어 자막이 조금씩 달라 번역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컷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극중에선 각자 언어로 말해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되는데, 시청자 입장에서는 좀 어색하지만 전뇌로 연결되는 세계상이니 바벨피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다만 Occupied(사용중)를 "가득 차 있는"으로 번역하는 극중 연출을 보면 그런 합리화에 조금 의문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트윗 한두 개로 갈음하려고 했지만 한 번 풀어내기 시작하니 이런저런 말이 하고 싶어지는 바람에 네 번째 체인을 작성하려던 시점에서 이럴 거라면 차라리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낫겠다 싶어 그 시점에서 텍스트 에디터를 열였습니다.

우선 원작과의 연관성을 따지자면 각본이나 연출이 이전 작품(만화, 극장판, TV 애니메이션)을 챙겨 봤다는 건 알겠습니다. 다만 "우리 전작 꼼꼼히 봤어! 그러니 각 작품에서 중요한 장면과 대사도 넣었어. 잘 했지?"라고 어필하고 싶은 마음만 앞섰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전체적 문맥은 완전히 바꾸었으면서 장면만 뚝뚝 떼 붙였기 때문에 마치 B급 패러디 영화에서 다른 유명한 작품을 대놓고 인용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패러디 영화라면 웃기기라도 할 텐데요. 원작의 현학 과잉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논란거리였다는 배우 화이트워싱보다 '내용 표백'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애초에 '공각기동대'는 매 번 매채를 바꾸어가며 만들어질 때마다 설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원전의 정신을 따지는 비평은 무의미하고, 심지어 그런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품 연출이 기존 작품의 오마쥬를 부르짖는 상황에서 이를 별도의 작품으로 평가해 주기는 어렵습니다.

인물로 넘어가면 흔히 일본에서 만드는 실사판 영화에 대한 비평에 빠지지 않는 '코스프레 캐릭터'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원작 캐릭터의 이미지를 따 온 부분은 그나마 볼 만합니다. 다만 그것도 피상적인 측면에서 하는 말이고 캐릭텨 묘사나 연출로 들어가면 다시 한 번 전 내러티브와 "예전 작품 봤다니까!"를 외치는 파편적인 오마쥬가 충돌을 일으킵니다. 작중에서는 쓰임새가 없지만 원작에 있는 설정을 (예를 들어 토구사는 전뇌화를 하지 않았다거나) 일부러 대사까지 넣어 가면서 티를 냅니다.

게다가 작품 자체로만 보고 싶어도 스토리라인이나 연출이 신선하지도 않습니다. 트윗 스레드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블레이드 러너"풍 광고 도배한 디스토피아 근미래는 고답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국가 위에 군림하는 기업 CEO, '사실 이 녀석도 착한 녀석이었어'까지 나오면 대체 뭐라고 부연해야 할지도 모르게씁니다. 개인이 쓴 작품평의 표현을 빌자면 "요즘 헐리우드 영화조차도 뻔한 설정을 이렇게 안일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라고 하고 싶네요.
그러면 액션 장면은 좋으냐? 아뇨. 전뇌와 의체가 있기에 가능한 연출이 있는 첫 씬 이외에는, 그냥 적당한 영화에서 총질하는 뱅크샷과 바꿔치기하더라도 이미 눈이 반쯤 풀린 시청자는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이런 명작을 만드신 분의 존함이 궁금해 찾아보니 루퍼트 샌더스라는데, 애초에 이번 작품이 두 번째 감독작이네요. 평론계에서는 잭 스나이더나 마이클 베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데, 마침 잭 스나이더처럼 TV 광고 제작하다 영화판에 들어온 케이스이네요. 각본가는 무려 세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트랜스포머 시리즈 각본을 맡기도 했네요. 차라리 트랜스포머는 뭔가 폭발하기라도 하겠네요.

이번 영화관 방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영화가 아니라 매점에 "너의 이름은." 컵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4월 7일 "고스트 인 더 셸(ゴースト・イン・ザ・シェル)"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는데, 일본어 더빙을 공각기동대 애니메이션 성우가 맡았다고 합니다. 엉망진창인 내용은 그대로일테니 괴리감만 더 커질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블루레이로 나오면 어떨지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네요.

답답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쓴 글이어서 여러 번 윤문했는데도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네요. 그래서 여러 감상평 중 가장 공감되는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그 결과로 <고스트 인 더 쉘>은 안타깝기 그지없게도 뭔가 차린 것은 화려하게 많은 듯하나 정작 먹을 것은 별로 없는, 주인공 없는 뷔페 테이블이 되고 말았다.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는 배포 이전에 자신만의 노선, 즉 이 영화만의 ‘고스트’라 할 것부터 보이지 않는다. 하여 흡사 수미상관인 듯 ‘쿠사나기’의 강하 장면으로 돌아가는 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 내가 두 시간짜리 거대 예고편을 본 것인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이야말로, 기계로 대체된 인체보다 훨씬 심각한 고스트의 부재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2017-04-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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